『명암집』은 조선 후기 학자 정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1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저자의 현손 정호선이 간행하였다. 총 6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권두에 조덕상·조성가의 서문과 권말에 이원배·허유·정호선·정규석 등의 발문이 있다. 시(詩) 653수를 비롯해 서(書), 기(記), 발(跋), 녹(錄), 전(傳) 등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정식(鄭栻)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경포(敬甫), 호는 명암(明庵)이다. 정식은 1683년(숙종 9)에 출생하였다. 청나라가 들어선지 약 40년 후에 태어났으나 중국 명(明)나라를 정통 왕조 국가로 인정하여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로 간주하고 배척하였으며, 조선이 청나라와 군신(君臣) 관계를 맺은 일을 굴욕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평생 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서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일생을 마쳤다.
정식의 문집은 본래 10여 권의 분량이었으나 조덕상(趙德常)이 산정(刪定)한 것이 고본(稿本)으로 보존되어 전해졌다. 여기에 정식의 현손(玄孫) 정호선(鄭好善)이 수록되지 않은 유문을 수집하여 편집한 후에 부록을 붙여 1901년(광무 5)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덕상· 조성가(趙性家)의 서문과 권말에 이원배(李元培)·허유(許愈)·정호선·정규석(鄭圭錫) 등의 발문이 있다.
시(詩) 547제 653수를 비롯해 서(書) 18편, 기(記) 7편, 발(跋) 4편, 녹(錄) 6편, 전(傳) 2편, 상량문(上樑文) 1편, 제문(祭文) 4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는 대부분 사경(寫景: 풍경을 묘사)·기행(紀行)·감흥(感興)·영회(詠懷)와 관련된 작품이다. 그러나 심회(心懷)를 드러내는 데 있어 세간의 공명과 인연을 끊게 된 데 대한 자각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는 편이며, 만년에 지은 시는 은거지락(隱居之樂)에 치중한 작품이 많다.
저자는 일평생 종주대의(宗周大義)를 숭상한 사람으로,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건국에 대한 분노와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은 조정에 대한 울분을 읊은 작품이 있다. 저자는 표면적으로는 유가(儒家)를 표방했지만 내면적으로는 도선(道仙)을 추구했다. 시에서 ‘선(仙)’과 ‘학(鶴)’의 시어가 자주 보이고, 김시습(金時習)의 생애와 문학을 흠모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점도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볼 수 있다.
기의 「촉석루중수기(矗石樓重修記)」에는 이름난 기생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특히 「의암비기(義巖碑記)」는 해당 비석이 세워진 내력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한 논개(論介)의 사적이 기술되어 있으며, 비명(碑銘)은 사언팔구 격구운체(隔句韻體)로 되어 있다.
발은 엄자릉(嚴子陵)·제갈량(諸葛亮)·주희(朱熹)의 초상화, 이백(李白)의 착월도(捉月圖)에 대해 썼다.
녹은 「관동(關東)」·「청학동(靑鶴洞)」·「두류(頭流)」·「가야산(伽倻山)」·「금산(錦山)」·「월출산(月出山)」 등의 작품이 있으며, 강산을 두루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