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외재집』은 조선 후기 학자 권명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5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21권 10책의 목활자본으로, 저자의 종질인 권재춘(權載春) 등이 편집·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망국의 회한을 읊은 시 작품을 비롯해 저자의 학문적 지향이 드러나는 서간문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권명희(權命熙)의 본관은 안동, 자는 공립(公立), 호는 삼외재(三畏齋) · 율산(栗山)이다.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 이후 고향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성리학 연구에 전력하였다.
1925년에 권명희의 종질(從姪)인 권재춘(權載春) 등이 편집 ·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문이나 발문은 없다.
권12는 시(詩) 441수, 권310은 서(書) 229편, 권11~15는 잡저(雜著) 44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16은 서(序) 9편, 기(記) 39편, 권17은 발(跋) 13편, 권18은 명(銘) 2편, 상량문(上樑文) 4편, 축문(祝文) 4편, 제문(祭文) 18편, 권19는 묘갈명 · 묘표 각 4편, 유사 2편, 행장(行狀) 9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20·21에 부록으로, 저자에 대한 행장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역사적 현실을 소재로 망국의 슬픔을 묘사한 작품과 서정의 사실적 표현에 역점을 둔 작품이 다수이다. 자연 경관을 소재로 한 작품 역시 국운이 쇠퇴한 시대 정황을 비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송병순(宋秉珣)의 시에 차운한 「경차심석재선생을미동운(敬次心石齋先生乙未冬韻)」은 일제의 침략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저자가 느낀 혼란스러운 심정을 읊은 시이며, 「한양유감(漢陽有感)」 · 「비완(悲惋)」 · 「독탄(獨歎)」 등은 망국의 회한과 슬픔을 묘사한 시이다.
서(書)에는 송병선에게 보낸 서간문과 품목(稟目)을 비롯해 송병순과 전우(田愚, 1841~1922)에게 보낸 서간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깊이 관심을 기울인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 대해 질문하거나 자신의 경학적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여정평언(與鄭平彦)」은 당시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의병을 규합해 항전하다가 순절한 최익현(崔益鉉)의 죽음을 몹시 애통해 하는 내용이다.
잡저에는 당시 서양 열강들이 침범하는 세태와 기독교를 비판한 「서상만록(西上謾錄)」, 성리학의 여러 가지 요목에 대한 논의를 담은 「이기변(理氣辨)」 · 「사칠설(四七說)」 · 「이통기국설(理通氣國說)」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중용기의(中庸記疑)」 · 「동몽의략(童蒙儀略)」 등은 하나의 독립된 저서로 분리시켜도 손색이 없을 만한 내용과 체재를 갖춘 글이다. 「을사일기(乙巳日記)」는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을 전후하여 송병선이 순절할 때까지 겪은 일과 의병 활동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유학자들이 벌인 국권회복운동의 자세한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서에는 저자의 학문관을 엿볼 수 있는 「춘추사의서(春秋私議序)」 · 「주자절략서(朱子節略序)」 등을 비롯해 저자의 교유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수성계서(須成契序)」 · 「송정편언서(宋鄭平彦序)」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은 「제연재송선생문(祭淵齋宋先生文)」 · 「제심석재송선생문(祭心石齋宋先生文)」 등 스승인 송병순과 송병선 형제에 대한 제문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묘갈명과 묘표는 주변 인물들에게 써 준 것으로, 「학생전공묘갈명(學生田公墓碣銘)」 · 「선조호군부군묘표(先祖護軍府君墓表)」 등이 있다. 유사의 「심석재송선생유사(心石齋宋先生遺事)」는 송병순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