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초백(楚白), 호는 서헌(恕軒)이다. 1720년(숙종 46) 진사시에 입격했으나 남인(南人)으로 전망이 없어 대과 응시를 포기하였다.
1856년(철종 7)에 저자의 후손 이상호(李相虎)와 이상기(李相驥)가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으며, 권말에 정원영(鄭遠永)과 이상기의 발문이 있다.
권1에는 시 2수, 소(疏) 3편, 서(書) 17편, 권2·3에는 잡저(雜著) 29편, 서(序) · 기(記) · 발(跋) 각 2편, 상량문(上樑文) 4편, 권4에는 제문(祭文) 6편, 행장(行狀) 1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만사(輓詞) · 제문 · 가장(家狀) · 행장 · 묘갈명 각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진시폐소(陳時弊疏)」는 정치적 혼란이 심해지고 지방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군정(軍政) · 전결(田結) · 조적(糶糴) 등 삼정(三政)의 문란함을 지적하고 그 시정책을 건의한 상소이다.
서(書)에는 송명기(宋命基) · 정중거(鄭仲擧) · 송학렴(宋學濂) 등에게 보낸 서간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답송명기(答宋命基)」는 저자의 경학적 견해를 파악할 수 있는 서간문으로, 심학(心學)의 근원인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에 대해 설명하고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 · 천명도(天命圖) · 용학도(庸學圖)에 대해 논하였다.
잡저의 「규반록(窺班錄)」은 태극(太極)과 성리(性理)에 관한 견해를 정리한 글로, 칙도획괘설(則圖劃卦說) · 칙서배괘설(則書排卦說) · 십이벽괘설(十二辟卦說) · 태극도해오행설(太極圖解五行說) · 논태극도설(論太極圖說) · 시책사상도설(蓍策四象圖說) · 성정이기도설(性情理氣圖說) · 칠정설(七情說) 등으로 항목을 나누어 이와 관련한 학자들의 다양한 학설을 정리하고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밝혔다. 「시무사의(時務私議)」는 당시 혼미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논의한 글로, 양역(良役) · 병제(兵制) · 첨정(簽丁) · 승군(僧軍) · 성보(城堡) · 해방(海防) · 전정(田政) · 조적 · 전화(錢貨) · 염리(鹽利) · 학교 · 과거 · 후천책(後天策) 등으로 항목을 구분하고 시정책을 밝혔다. 이 밖에 『대학(大學)』에 대해 논한 「고대학설(古大學說)」 과 「대학정심장설(大學正心章說)」, 심의의 제도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심의설(深衣說)」 등이 있다.
제문은 강해(姜楷)와 송명기를 비롯해 백부(伯父) · 숙부(叔父) · 재종형(再從兄) · 막내 아우 등 6명에 대한 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