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재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 문신 이동언의 시 · 소 · 계 · 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
문헌/고서
저자
이동언(李東彦)
편저자
이동언(李東彦)
권책수
10권 6책
판본
필사본
표제
삼복재유고(三復齋遺稿)
소장처
고려대학교 도서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삼복재집』은 조선 후기 문신 이동언의 시(詩)·소(疏)·계(啓)·만사(挽詞)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모두 10권 6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행을 위해 서형수(徐逈修)가 작품을 선별하고 증손 이헌영(李憲泳)이 편집하였으나 간행되지는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한다. 권두에 홍석주(洪奭周)가 쓴 서문과 「삼복재집총목(三復齋集總目)」이 있다.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이동언의 시 · 소 · 계 · 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이동언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국미(國美), 호는 삼복재(三復齋)이다. 1693년(숙종 19) 알성 문과에 급제한 후에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서지사항

『삼복재집』은 10권 6책의 필사본으로 고본(稿本)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경위

간행을 위해 저자의 생질 서형수(徐逈修)가 작품을 선별하고 증손 이헌영(李憲泳)이 편집하였으나 간행되지는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한다.

구성과 내용

권두에 홍석주(洪奭周)가 1631년(인조 9)에 쓴 서문과 「삼복재집총목(三復齋集總目)」이 있다.

권1·2에는 부(賦) 4편, 시(詩) 224수, 권3·4에는 소(疏) 22편, 권5~7에는 계(啓) 124편, 장(狀) 2편, 서(序) 7편, 권8에는 기(記) 5편, 권9에는 교서(敎書), 상량문(上樑文), 송명(頌銘), 축문(祝文), 제문(祭文), 잡저(雜著), 권10에는 북경집(北扃集)이 수록되어 있다. 권11은 부록으로 가장(家狀) 1편, 묘갈명(墓碣銘) 1편, 만사(挽詞) 63수, 서(書) 3편, 유사(遺事) 1편, 시 6수, 별록으로 그의 부인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행장과 묘지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시는 오언고시, 칠언고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배율, 칠언배율로, 시체(詩體)에 따라 작품이 배열되어 있다. 칠언율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유람시, 영사시, 송별시, 차운시, 만시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유람시 가운데 「유칠보산추차창려남산시운(遊七寶山追次昌黎南山詩韻)」은 저자가 관북지방 칠보산을 유람한 뒤 한유(韓愈)가 종남산(終南山)에 올라가 그 승경(勝景)을 묘사한 「남산시(南山詩)」에 차운한 작품이다. 송별시로는 조대수(趙大壽, 16551721), 정희하(鄭羲河, 16811747), 김홍복(金洪福, 1649~1698) 등을 위해 지은 시가 있어 이들과의 교유관계를 살필 수 있다.

부의 「증와부(憎蛙賦)」는 소인(小人)들이 작당해 군자(君子)를 모함하는 소리를 개구리 울음 소리에 비유한 작품이다.

소의 「진소회소(陳所懷疏)」는 제궁(諸宮)의 폐단들을 거론하고 규제를 강화하기를 주청한 상소문이다. 「성묘후사직잉진민우소(省墓後辭職仍陳民憂疏)」는 백성들의 고달픈 생활에 대해 올린 상소문으로, 경기도 지역은 가뭄을 비롯해 장마와 홍수로 인한 피해가 심해 조세를 감면해야 하고 파주는 능이 많아서 부역이 과중하니 다른 고을과 부역을 분담하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경기유생청문원공김장생승배성무소(代京圻儒生請文元公金長生陞配聖廡疏)」는 경기 지역 유생들을 대신하여 김장생(金長生)을 문묘에 배향하기를 주청한 상소문이다. 「대영평유생청옥병서원사액소(代永平儒生請玉屛書院賜額疏)」는 영평 지역 유생을 대신해 박순(朴淳) · 이의건(李義健) · 김수항(金壽恒) 등을 봉향한 옥병서원에 사액(賜額)을 내려주기를 주청한 상소문이다.

계는 이사상(李師尙)을 전시 사판(殿試仕版)에서 삭제하자는 내용, 수의(首醫) 최성임(崔聖任) 등을 직무 태만으로 귀양 보내야 한다는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기의 「관어재기(觀魚齋記)」는 저자의 당숙이 광릉(廣陵) 근처에 건립한 관어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북유만기(北遊漫記)」는 저자가 1703년(숙종 29) 2월 4일부터 10월 29일까지 북평사(北評事)로 북관 지역의 상황을 돌아보고 쓴 기문으로, 북관 지역으로 가는 여정과 북관 지역의 상황이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유칠보산기(遊七寶山記)」는 저자가 1702년(숙종 28) 경에 지금의 함경북도 명천(明川)에 있는 칠보산을 유람하고 지은 기문으로, 특히 칠보산의 내칠보에 있는 주요 봉우리와 바위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해당 작품은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1868~1943)가 필사한 조선시대 기행문 선집 『와유록목록(臥遊錄目錄)』에도 실려 있다.

부록에는 저자의 동생 이동언(李東彦)이 지은 가장, 이의철(李宜哲)이 지은 묘갈명, 신임(申銋) · 임방(任埅) · 김창집(金昌集) 등이 지은 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삼복재집(三復齋集)』(고려대학교 소장본)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