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 ( )

목차
관련 정보
익산 미륵사지 전경
익산 미륵사지 전경
불교
유적
국가유산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무왕 당시 창건한 사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익산 미륵사지(益山 彌勒寺址)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6년 06월 22일 지정)
소재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무왕 당시 창건한 사찰.
내용

백제 무왕 때 창건하였으며, 삼국시대 절 가운데 백제의 절로는 최대의 규모이다.

백제무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獅子寺)에 행차하였을 때 용화산(龍華山) 아래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타났으므로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다. 왕비가 왕에게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청하였으므로 지명법사(知命法師)의 도움으로 못을 메워 절을 창건하였다. 2013년부터 시작된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 따르면 절을 창건한 사람이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절에는 미래불인 미륵이 3회의 설법으로 미래의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용화삼회설(龍華三會說)에 입각하여 전(殿)과 탑과 낭무(廊廡)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 이 절터는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인 서동(薯童)과 선화공주(善化公主)와의 설화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자세하지 않으나, 719년(성덕왕 18) 9월금마군(金馬郡)의 미륵사탑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전한다. 이는 미륵사의 탑에 벼락이 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407년(태종 7) 나라에서 여러 고을의 자복사찰(資福寺刹)을 정할 때 충청북도 청주의 보경사(菩慶寺),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의 진구사(珍丘寺) 등의 여러 사찰과 함께 자복사찰로 지정된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는 사찰이 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절터 전체는 196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92년 절터 주변에 흩어진 옛 석재들을 일부 재사용하여 동탑(東塔)을 복원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전통사찰총서』 8-전북의 전통사찰Ⅰ-(사찰문화연구원, 1997)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집필자
장충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