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아찬(阿飡). 463년(자비마립간 6) 왜인(倭人)이 신라의 삽량성(歃良城 :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을 침입하였으나 신라군에 의하여 격퇴되었다.
이 때 벌지는 덕지(德智)와 함께 왕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거느리고 중로(中路)에 숨어 기다리다가 요격(邀擊)하여 왜병을 크게 깨뜨리는 공을 세웠다. 당시 신라는 왜인이 자주 변경을 침입하므로 연해지방(沿海地方)에 성을 쌓고 전선(戰船)을 수리하여 대비하였다.
자비왕은 473년 정월에 벌지를 당시 신라의 당(幢)·정(停)으로 불리는 독립부대의 지휘관인 좌장군으로, 급찬(級飡) 덕지를 우장군으로 임명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