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0년에 조성한 목조아미타삼존불상과 1803년에 조성한 철제 수정(水井)이 전해 온다.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따르면, 소요 태능(1562~1649)이 증명 법사로 참여하였고 화원은 나균(懶筠), 뇌형(雷逈), 법란(法蘭)이었다. 수(首) 조각승 나균은 다른 기록에 보이지 않으므로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뇌형은 1651년에 조성된 고흥 금탑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의 조각승으로 참여하였고, 법란은 1636년에 조성된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시왕상의 조각승에 그 법명이 보인다. 그리고 증명 법사로 참여한 소요 태능은 서산대사 청허 휴정의 4대 제자 중 한 명으로, 청허계 소요문파의 조사이다. 담양 용추사에 그의 승탑이 세워져 있다.
철제 수정의 용도에 대해서 방화수를 담아 두었던 주2’라는 견해, 조선 후기 공납으로 납품하던 종이를 제작하기 위한 철솥이라는 견해, 차를 덖기 위한 솥이라는 견해 등이 있다.
보리암 입구에는 근래에 세운 정유재란 순절 추모비 3기가 있다. 첫 번째 비석은 의병장 김덕령(15671569)의 부인 흥양 이씨의 순절 추모비이고, 두 번째 비석은 김덕령의 처남 이인경의 부인 광산 김씨와 이원경의 부인 제주 양씨의 순절 추모비이며, 세 번째 비석은 김덕령의 매형인 김응회의 모친인 창녕 성씨의 순절 추모비이다. 김응회(15551597)는 모친과 세 부인을 지키려다가 추월산 입구에서 순국하였고, 산으로 도망가던 네 명의 부인은 지금의 보리암 입구 절벽에서 순절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