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봉서사와 관련하여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주1 전주부 불우조에 “봉서사는 서방산에 있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고려시대 이래 존속되어 온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구전에 따르면 727년(성덕왕 26)에 창건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후 봉서사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고, 1857년(철종 8)에 봉서사에서 간행한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攷)』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초의 의순(17861866)이 1847년(헌종 13)에 은고(隱皐) 김기종(金箕宗)으로부터 진묵대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일대기를 적은 책이다. 진묵대사(15621633)는 법명이 일옥이고, 호가 ‘진묵’이다.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7세에 출가하여 봉서사에 오래 머물며 수행하였다. 그의 일생을 기록한 『진묵조사유적고』에는 여러 가지 신이한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김장생의 제자인 봉곡 김동준(1575~1661)과 교류한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유학자들과도 깊이 교류한 것을 알 수 있다.
봉서사에는 진묵대사와 해인사 대장경에 얽힌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 절에서 수도하던 진묵대사는 자주 해인사를 왕래하면서 대장경을 모두 암송하였다 한다. 하루는 진묵대사가 제자를 데리고 급히 해인사로 갔는데, 그날 밤 대장경각 옆에서 불이 났으나 도저히 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진묵대사가 솔잎에 물을 적셔 불길이 번지는 곳에 몇 번 뿌리자 갑자기 폭우가 내려 불길을 잡음으로써 대장경판의 소실 위기를 구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근대 봉서사는 해방 후까지 많은 수행자들이 거처하는 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완전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63년 이후 다시 중창되었다. 전쟁 이전에는 대웅전 · 명부전 · 나한전 · 삼성루(三聖樓) · 천왕각(天王閣) · 동루(東樓) · 서전(西殿) · 일주문(一柱門) · 상운암(上雲庵)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63년에 승려 호산(湖山)이 대웅전과 주2를 신축하였고, 1975년에 삼성각을, 1979년에는 대웅전, 관음전, 요사, 진묵전(震默殿)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영각과 나한전, 산신각, 칠성각이 한 건물 안에 배치되어 있고 그 밖에 종루가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진묵대사 부도를 비롯한 몇 기의 부도가 있으며, 1979년에 세운 일붕선시비(一鵬禪詩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