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산 불암사 ( )

불교
유적
경기도 남양주시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이 824년에 창건하였다고 알려진 사찰.
유적/건물
건립 시기
824년(헌덕왕 16)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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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불암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이 824년에 창건하였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그러나 도헌이 824년에 출생하였으므로 이 기록은 믿기 어렵다. 이후 도선이 중창하고, 조선에 들어와 무학이 삼창하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불암사가 보이며, 조선 후기 이후 지속적으로 중수가 이루어졌다. 특히 보물로 지정된 석씨원류응화사적목판,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비롯하여 경기도 유형 문화재인 불암사경판 등은 17·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불암사의 사격(寺格)을 짐작하게 한다.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이 824년에 창건하였다고 알려진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주1이다. 진관사, 주2, 승가사와 함께 서울 근교 4대 주3 중의 하나로서, 세조 때 도성 사방에 왕실의 주4을 하나씩 정할 때 동불암(東佛巖), 즉 동쪽에 불암사가 꼽혔다.

절 입구 제월루(霽月樓) 앞에 세워져 있는 「천보산불암사사적비(天寶山佛巖寺事蹟碑)」(1731)에 의하면, 824년(헌덕왕 16) 주5을 일으켰던 지증대사(智證大師)가 창건하였고, 도선(道詵)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 무학(無學)이 삼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증대사 도헌의 출생연도가 824년이므로, 이 기록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이후 성종 때 중건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주목 불우조에 불암사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사세가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782년(정조 6) 서악(西岳)이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중수하고 제월루(霽月樓)를 다른 곳으로부터 주6. 1855년(철종 6)에 보성(寶性) · 춘봉(春峯) · 혜월(慧月) 등이 중수하였으며, 1910년 독성각 · 산신각 · 동축당(東竺堂)이 창건되었다.

1959년에는 만허(滿虛)가 칠성각을 지었고, 1989년에는 태국과 스리랑카에서 각각 3과와 4과의 진신 주7를 모셔와 진신 사리 보탑을 세워 봉안하였다. 1991년 관음전이 소실되었으나 1992년에 중건하였고, 1994년에는 주8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현존하는 주9로는 금당(金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제월루 · 관음전 · 약사전 · 지장전 · 칠성각 · 일주문 · 요사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591호로 지정된 석씨원류응화사적 목판(釋氏源流應化事蹟 木板) 212매가 있다. 1631(인조 9)에 정두원(鄭斗源)이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책을 바탕으로 1673년(현종 14)에 승려 지십(智十)이 이 사찰에서 목판본으로 발간한 책판이다. 불암사 소장이긴 하나 보관상의 문제로 현재는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2018년 보물 제2003호로 지정된 남양주 불암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南楊州 佛巖寺 木造 觀音菩薩 坐像)이 있다. 조성 발원문과 중수 발원문이 남아 있다. 1649년(인조 27)에 대둔산 묘련암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고 1907년 이 불암사에 봉안하기 위해 개금 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다. 36종의 불경과 불교 관계 문헌을 새긴 목판으로 불암사 경판이 있다. 대부분 1635년(인조 13)에서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것으로 591매이며 언해본도 포함되어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목판들은 17·18세기 불암사의 사격을 잘 보여준다.

이외에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남양주 불암사 석가삼존십육나한도(南陽州 佛巖寺 釋迦三尊十六羅漢圖), 남양주 불암사 괘불도(佛巖寺 掛佛圖), 남양주 불암사 목조석가여래좌상(佛庵寺 木造釋迦如來坐像)이 있다.

절 뒤 암벽에는 마애삼존불과 이를 주10 12지신상이 조성되어 있는데, 각각 1973년과 2011년에 조각된 것이다.

부속 암자로는 약 150년 전에 중건된 석천암(石泉庵)이 있고, 1960년대에 조각된 호인상(好人像)의 특이한 주11이 있으며, 주12 또한 유명하다.

의의

불암사는 조선시대에 도성 사방의 사찰 중 하나로 꼽히는데,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지며 그 사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간행된 석씨원류응화사적목판 212매, 불암사경판 519매 등은 17·18세기 사찰의 불서 간행에 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원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천보산불암사사적비(天寶山佛巖寺事蹟碑)」(1731)

단행본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이고운·박설산, 『명산고찰 따라』 (보림사, 1982)
이정, 『한국불교사찰사전』 (불교시대사, 1996)
『전통사찰총서』 5(사찰문화연구원, 1995)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
주석
주1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주2

안양 삼성산에 있는 절. 용주사의 말사(末寺)로, 신라 때에 원효ㆍ의상ㆍ윤필(尹弼) 세 사람이 암자를 짓고 수도한 곳으로, 신라 말기에 도선이 크게 짓고 관음사라 하였다가 고려 시대에 중건하여 이 이름으로 고쳤다. 우리말샘

주3

이름난 절. 우리말샘

주4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던 법당. 궁중에 둔 것은 내불당 또는 내원당이라 하였다. 우리말샘

주5

선종 구산문의 하나. 신라 헌강왕 때 도현이 경상북도 문경시에 개산하였다. 우리말샘

주6

건축물 따위를 옮겨 짓거나 세우다. 우리말샘

주7

석가모니의 유골. 후세에는 화장한 뒤에 나온 구슬 모양의 것만 이른다. 우리말샘

주8

절 같은 데서 기둥을 한 줄로 배치한 문. 우리말샘

주9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0

외부에서 보호를 하여 주다. 우리말샘

주11

자연 암벽에 부조(浮彫) 또는 음각으로 조각한 불상. 인도에서 발생하여 한국, 중국, 일본에 전하여졌다. 우리말샘

주12

바위틈에서 나오는 샘물. 우리말샘

집필자
박미선(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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