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이시방의 아들 이회(李恢)·이관(李慣)·이항(李恒)·이준(李懏) 중의 한 사람이 편찬한 듯 하나, 정확한 편자는 알 수 없다. 편찬 연대는 17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책의 체재가 정제되어 있지 않다. 책의 서두에는 이시방의 형 이시담(李時聃)의 기록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가문의 선대 기록을 전하기 위한 목적에서 작성한 책으로 보인다. 이시방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의 아들로서, 서봉(西峯)은 그의 호이다. 인조반정(仁祖反正)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그 뒤로도 공조·호조·형조의 판서에까지 오르면서 중앙 정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서두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쓴 이시담의 묘표(墓表)와 송준길(宋浚吉)이 쓴 이시담의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다. 이어 연안이씨(延安李氏)의 계보를 간략히 정리하고 그 이하에 본문을 실었다.
본문은 이시방의 출생과 어렸을 때의 일을 비롯해서 인조반정에의 참여, 그 뒤의 관직 생활, 그의 여러 가지 건의와 주장, 가족 관계, 장지 등에 대해 연대순으로 기록하였다. 이 가운데에 병자호란까지의 기록은 비교적 간단하고, 그 뒤 중앙의 고위 관직자로서의 생활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표지에 ‘서봉일기’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본문 기술에서는 이시방을 ‘선공(先公)’이라 하고 이귀를 ‘조부(祖父)’라고 지칭한 것으로 보아, 이시방이 아니라 그 아들이 엮은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이시방이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인조반정의 경과, 이괄(李适)의 난이나 정묘호란·병자호란의 상황, 이시방이 최명길(崔鳴吉)과 함께 대동법(大同法)의 시행을 추진한 것, 군량미의 비축을 위한 전세(田稅)의 시정책을 건의한 것과 같은 중앙 정국의 상황이나 정책의 추진 등에 대한 사실을 많이 전하고 있다. 특히 이귀와 그의 아들 이시백(時白)·이시방이 당색으로는 서인에 속하는 한편, 당시 김류(金瑬)와 더불어 반정공신의 양대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당시 반정공신들과 일반 신하들 간의 대립, 서인과 남인 간의 대립의 면모를 비롯해서 그런 상황에서 여러 인물들이 이합집산하는 것 등 정치사의 이면이 드러나 있다. 또한, 그 가족 관계나 민간의 생활상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기술을 하고 있으므로 객관적인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자료와 충분히 비교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