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우재(愚齋). 충남 연기 출생. 아버지는 안재관(安在官)이며, 어머니는 이래예(李來禮)이다.
1953년공주의 봉황중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에는 공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에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여 1960년 3월에 졸업하였고, 그 뒤 경희대학교대학원에서 한국고고학 전공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1960년 9월에 공주중학교 강사를 맡았으며, 이후 1961년 9월부터 1963년 2월까지 공주 영명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이어서 1963년 2월부터 1968년 2월까지는 공주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그 사이에 1965년 2월부터 1966년 8월까지 공주사범대학 강사를 맡았다.
1968년 3월부터 1998년 6월까지 공주사범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를 지내면서 백제유적의 조사·연구 및 제자 양성에 노력하였다. 1985년 4월부터 1991년 5월까지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89년 9월부터 1990년 6월까지는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1990년 3월에는 공주대학 제12대 학장이 되었으며, 이듬해 공주대학이 공주대학교로 승격됨에 따라 1991년 3월부터 1995년 2월까지 만 4년 동안 초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1991년 5월부터 1998년 6월까지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문화재위원회 문화재위원을 맡아 우리 나라 문화유적의 발굴조사와 보존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1991년 11월에서 1992년 11월까지 한국고대학회(韓國古代學會)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총장을 사임한 뒤, 1995년 6월부터 충남발전연구원 초대 원장을 맡아 파견근무를 하던 중 1998년 6월 23일 과로로 순직하였다.
해방 후 고고학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시기에 일찍부터 고고학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 나라 고고학, 특히 백제고고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부여 송국리 석관묘조사를 통하여 한강이남 지역에서는 최초로 비파형동검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었으며, 무령왕릉의 발굴조사에도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백제고분을 조사·연구하여 해방 후 국내 학자로는 최초로 백제고분을 체계적으로 연구·정리하여 이후 백제고분 연구의 중요한 단초를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공주·부여 지역에 산재해 있던 백제사찰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출토지조차 확인되지 않던 각종 백제토기를 집대성하여 종류별로 특징과 변천과정을 연구함으로써 이후 백제사지 및 백제토기 연구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저서로는 『신한국사』(1973)와 같은 개설서 이외에 『한국의 미(美)-토기(5)』(1981), 『한국의 미(美)-고분미술(22)』(1985), 『백제토기도록』(1984), 『공산성』(1982) 등 백제의 고분·성·토기 등에 관한 연구서가 있으며, 웅진동고분군·모촌리고분군·칠지리고분군 등 다수의 백제고분 발굴조사보고서가 있다.
논문 또한 「백제고분의 연구」(1975), 「백제 사지(寺址)의 연구」(1985), 「백제토기의 대외교섭」(1996) 등 백제고분과 백제사지, 토기 등에 관한 20여 편의 논문이 있다.
1985년 12월에 충청남도 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하였고, 1998년 9월 10일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