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렬 ()

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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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결사의용단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2년(고종 29)
사망 연도
1973년
출생지
평안남도 중화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결사의용단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조선 말기의 군인·의병. 평안남도 중화 출신. 독립군 여순근(呂淳根)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9년 YMCA영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동지들과 같이 만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 상해임시정부와의 연락방법 및 국내활동에 대하여 협의하고 귀국하였다.

다시 상해에 다녀온 뒤에 홍석운(洪錫雲)·이기영(李起榮)·김송혁(金松爀)·한준관(韓俊觀)·문빈(文斌)·이춘삼(李春三) 등과 더불어 항일구국단을 조직하고, 총무로 활동하였다. 같은해 11월 동지들로 하여금 만주에서 권총과 폭탄을 반입하도록 하는 등 무장독립운동을 준비하였으며, 이듬해인 1920년 3월 임시정부 특파원 김석황(金錫璜)과 협의하여 결사의용단을 조직하고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여 군자금모금과 무기구입에 노력하였다.

같은 해 8월 만주에서 귀국한 동지들과 함께 평안남도 도청·평양경찰서 등 일제 관청을 일시에 폭파시키기로 하고, 자신은 표영준(表永俊)과 같이 평양부청에 폭탄을 던졌으나 폭탄이 불발하여 실패하였다.

계속하여 일본인 경찰을 사살하고, 평안남도 경찰부장의 차를 저격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다가 중화경찰서에 잡혀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1927년 출소하여 만주에서 아버지를 만난 다음 상해로 가던 중 중국 관헌에게 잡혀 일본영사관을 거쳐 국내로 압송되어 주거제한조처를 당하였다.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자 김구(金九)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5·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1976)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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