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겸 ()

고성 운흥사 감로왕도
고성 운흥사 감로왕도
회화
인물
조선후기 「청곡사괘불」, 「운흥사괘불」, 「다보사괘불」 등을 그린 승려. 화승(畫僧).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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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의겸은 조선 후기 「청곡사괘불」, 「운흥사괘불」, 「다보사괘불」 등을 그린 승려이다. 숙종조부터 영조조까지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천은사 등 많은 사찰에 영산회상도·팔상도·나한도·감로왕도 등 다양한 주제의 불화를 그렸다. 특히 경상남도 고성 운흥사에 머물면서 그의 집단을 형성하였다. 그의 초본이 여러 사찰의 불화 조성에 사용되었다. 문하생으로 긍척·비현·쾌윤·사신 등의 화사들이 배출되어 그의 화풍을 이어나갔다. 현재 남아 있는 의겸의 작품은 약 25여 점으로 「개암사괘불도」 등이 유명하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청곡사괘불」, 「운흥사괘불」, 「다보사괘불」 등을 그린 승려. 화승(畫僧).
활동사항

숙종조부터 영조조(1710년경∼1760년경)까지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긴 조계산문(曹溪山門)의 대표적 화사이다. 전라남도 순천의 조계산을 중심으로 송광사 · 실상사 · 천은사, 경상남도 운흥사 · 청곡사 등의 사찰에 영산회상도 · 팔상도 · 나한도 · 감로왕도 · 괘불 등 다양한 주제의 불화를 그렸다. 특히 경상남도 고성 운흥사에 머물면서 그의 집단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며, 초본(草本)이 여러 사찰의 불화 조성에 사용되었다. 그의 대표작인 「청곡사괘불도(靑谷寺掛佛圖)」(1724년), 「운흥사괘불도(雲興寺掛佛圖)」(1730년), 「다보사괘불도(多寶寺掛佛圖)」(1745년), 「개암사괘불도(開巖寺掛佛圖)」(1749년)의 4점은 개암사에 보관되어 온 초본(현재 통도사 보관)을 사용한 것이다. 또 「운흥사팔상도」(1719년)는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송광사팔상도」(1728년) · 「쌍계사팔상도」(1728년)와 화면 구성 등이 일치된 점으로 보아 그의 화풍이 전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세계

현재 남아 있는 의겸의 작품은 약 25여 점이 남아 있는데, 화풍상 다음과 같이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1710년∼1729년)의 불화에서는 전통적인 도상 및 명대(明代) 화본류에서 소개된 도상 수용에 의한 안정감있는 화면구성, 강한 수묵담채적(水墨淡彩的) 경향, 사실적이고 섬세한 필법을 보인다. 그리고 황토색 바탕에 양녹색과 선홍색의 대비로 형성된 격조있는 색조화를 연출했다. 불 · 보살은 갸름하고 단아한 얼굴에 어깨에 적당히 살이 붙은 몸집으로 표현되었다. 즉, 「운흥사팔상도」나 「흥국사수월관음도」에서는 절파계 수묵법을 구사했으며 「흥국사십육나한도」는 『홍씨선불기종(洪氏禪佛奇蹤)』중의 도상을 수용했다. 특히 「운흥사팔상도」, 「흥국사수월관음도」 및 「흥국사십육나한도」는 이후 「송광사팔상도」, 「송광사십육나한도」, 「운흥사관음보살도」의 모본이 되었다. 172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붓의 놀림이 신선과 같다는 호선(毫仙)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완숙한 경지에 들기 시작하였다.

제2기(1730년∼1740년초)는 존숙(尊宿: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남의 본보기가 될 만한 스님. 또는 절의 주지)이라는 칭호를 받았을 정도로 작품 활동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여전히 생명력있는 필선을 구사하는 한편 화면에 장식성이 농후해졌고 간단한 화면구성과 진채(眞彩)에서 유도되는 시각적 효과에 주안점을 두었다. 즉 황토색 바탕에 밝은 양녹색과 선홍색으로 설채한 「운흥사감로도」의 경우 화면상단 중앙에 선홍색의 옷을 걸친 정면상의 칠여래가 구름을 타고 나타나는 장면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의도된 시각적 효과는 「선암사감로도」에서는 좀 더 성공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여러 장면들을 제외시켜 불필요한 시선을 줄였고 진채로 설채해 깔끔하면서 따스한 화면을 보여준다.

제3기(1740년대 말∼1750년)은 노숙기로, 작품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양식적 특징을 논하기 어렵다. 그러나 「천은사칠성도」나 「개암사괘불도」는 2기의 특징이었던 공간정리에서 오는 간결한 화면구성을 보여주며 홍색과 흑색의 색채 대비, 홍색과 녹색의 보색대비에서 연출되는 색조화를 갖추고 있다. 또 「개암사괘불도」에서는 모든 불보살들의 옷의 문양에 강한 장식성이 남아 있다. 의겸이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화엄사삼신불회도(華嚴寺三神佛會圖)」는 호분이 많이 첨가된 탁한 양녹색과 암적색의 설채법을 보여 1, 2기 때의 선명한 화면과는 달리 뿌연 느낌을 준다.

의겸은 화풍상으로는 천신(天信)과 연관을 가지며 봉각(奉覺)이나 광구(廣口) 아래에서 활동하였다. 독립하여서는 대규모 화사조직의 대표자로서 평생 수많은 불사에 참여하면서 선암사 · 송광사 · 여수 흥국사에 그의 문하생인 긍척(亘陟) · 비현(丕玄) · 쾌윤(快允) · 사신(思信) 등의 화사들이 배출되어 그의 화풍을 이어나갔다.

참고문헌

『전통사찰총서 7 -광주·전남의 전통사찰Ⅱ-』(사찰문화연구원, 1996)
『한국의 불화초본』(성보박물관, 1992)
『운흥사와 화사 의겸에 관한 고찰』(이은희, 『문화재』28, 1991)
『괘불』(윤열수, 대원사, 1990)
「1730년 의겸작 내원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연구 - 조선후기 백의관음신앙의 측면에서」(김영희, 『불교미술사학』 29, 2020)
「1725년 의겸화파의 송광사 불조전 「오십삼불도」」(정명희, 『미술자료』 95, 2019)
「조선후기 조계산 지역 불화의 연구」(장희정, 『미술사학연구』 210, 1996. 6)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하」(안귀숙, 『미술사연구』 9, 1995)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상」(안귀숙, 『미술사연구』 8, 1994)
「흥국사 감로탱의 도상과 형식」(강우방, 『미술사학지 1-여천 흥국사의 불교미술』, 국립중앙박물관, 1993)
「운흥사와 화사 의겸에 관한 고찰」(이은희, 『문화재』 24, 1991)
집필자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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