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년 ()

목차
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인물
1237년(고종 24), 나주목의 속현인 원율(原栗)과 담양(潭陽)에서 저항을 일으킨 주모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37년(고종 25)
본관
원율(原栗)
출생지
미상
주요 저서
미상
주요 작품
미상
주요 관직
미상
관련 사건
원율(原栗) 이연년(李延年) 형제의 저항
내용 요약

이연년은 1237년(고종 24) 나주목의 속현인 원율(原栗)·담양(潭陽)에서 저항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원율은 나주목(羅州牧)의 속현(屬縣)이었고, 담양 또한 나주목의 속현으로서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이연년의 저항은 강화천도(江華遷都) 이후 몽골의 3차 침입(1235~1239, 고종 22~26)으로 고려가 막대한 피해를 보았던 시기에 일어났던 점에서 내륙 지역의 피해와 질고(疾苦)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목차
정의
1237년(고종 24), 나주목의 속현인 원율(原栗)과 담양(潭陽)에서 저항을 일으킨 주모자.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원율(原栗). 이연년(李延年)의 부모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가계를 전혀 알 수 없으나, 자기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다.

주요 활동

1237년(고종 24) 원율(原栗)의 이연년 형제는 산림(山林)의 무리를 끌어모아 ‘백적도원수(百賊都元帥)’를 자칭하고 해양(海陽) 등지의 주 · 군(州郡)을 점령하여 위세를 떨쳤다. 이연년 형제가 중심이 된 민의 저항은 몽골의 3차 침입(1235∼1239, 고종 22∼26)으로 고려가 막대한 피해를 보았던 시기에 일어났던 점에서 강화천도(江華遷都) 이후 내륙 지역의 피해와 주1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원율은 나주목(羅州牧)의 속현(屬縣)이었고, 담양 또한 나주목의 속현으로서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그리고 반란이 일어났던 시기는 1236년(고종 23) 이후 최씨 정권의 최대 숙원 사업이었던 주2을 조판하던 시기였다. 이 조판 사업에는 경제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었는데, 최씨 정권 경제력의 바탕을 이루었던 전국 각지의 농장이 그 기저가 되었다. 최씨 정권의 농장 분포는 임피(臨陂) · 진도(珍島) · 강진(康津) · 보성(寶城) · 화순(和順) · 승주(昇州) · 남해(南海) · 하동(河東) · 진주(晋州) · 단성(丹城) 등 전라 · 경상도 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로 보아 원율⋅담양에도 최씨 정권의 농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1182년(명종 12) 전주(全州)의 기두(旗頭) 죽동(竹同) 등의 저항 배경이 관선(官船) 제조의 폐단에서 비롯되었듯이, 이연년 등의 저항도 『팔만대장경』 조판 사업과 주3 정부의 대민 수탈의 폐단에서 발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원율 · 담양 등 여러 고을의 무뢰배(無賴輩)들을 불러 모아”, “적이 김경손(金慶孫)이 나주로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주성(州城)을 포위하는 데 적이 수풀처럼 빽빽이 모였다.”라는 문구를 통해서도, 여기에 참여한 계층들이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연년이 스스로 ‘백적도원수(百賊都元帥)’라고 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백제도원수(百濟都元帥)’의 오기(誤記)로 이해한다. 이연년 형제를 필두로 한 대정부 저항은 앞서 최충헌 정권 초기 경주의 ‘신라 부흥 운동(新羅復興運動)’, 1217년(고종 4) 최광수(崔光秀)의 ‘고구려 부흥 운동(高句麗復興運動)’과 더불어 무신 정권의 가혹한 불법 행위에 맞서 새로운 질서 구축을 기치로 삼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1237년 나주성에 진주한 전라도지휘사(全羅道指揮使) 김경손(金慶孫)을 포위하여 싸우다가 이연년이 살해됨으로써 저항이 평정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호산록(湖山錄)』

단행본

신안식,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경인문화사, 2002)
이정신, 『고려 무신정권기 농민·천민 항쟁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1)

논문

김광식, 「최항의 쌍봉사 사원세력 구축과 이연년난」(『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 한국사학논총』, 탐구당, 1992)
박종기, 「12, 13세기 농민항쟁의 원인에 대한 고찰」(『동방학지』 6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90)
변동명, 「무인정권시기의 백제부흥운동과 이연년」(『한국중세의 지역사회연구』, 학연문화사, 2002)
신안식, 「대몽항쟁기 민의 동향」(『역사와 현실』7, 한국역사연구회, 1992)
신안식, 「고려중기 삼국부흥운동의 ‘지역성’과 ‘저항성’」(『한국중세사연구』 47, 한국중세사학회, 2016)
주석
주1

병으로 인한 괴로움. 우리말샘

주2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만들었는데, 경판(經板)의 수가 8만 1258판에 이르며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말샘

주3

‘강화’의 다른 이름.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의 침입으로 도읍을 이곳으로 옮긴 후, 원종 11년(1270)에 환도(還都)할 때까지 39년 동안 임시 수도로 삼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우리말샘

집필자
신안식(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 고려시대사)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