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호세(好世). 이인관(李仁寬)의 장남이다.
1929년 경성중학교(京城中學校)를 졸업하고, 1934년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廣島高等師範學校] 영어과를 거쳐, 1937년 히로시마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평안남도 시학(視學)에 발령되고, 1943년 평양 서문고등여자보통학교 교유(敎諭)를 거쳐, 1945년초 경성사범학교 교유 겸 총독부 교학관(敎學官)이 되었다. 광복 직후 청주제일공립중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다음해 성신대학(聖神大學) 교수, 1952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수가 되었다.
1954년 한국외국어대학으로 옮겼다가 1961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가 되어, 교학처장·교무처장·사범대학 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3년 부산대학교에서 「한국현대정치문화사연구(韓國現代政治文化史硏究)」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73년 한양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있어 1932년 희곡 「마장」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1933년 희곡 「뒤집혀진 삼각형」이 『동아일보』에, 1934년 희곡 「꿈」과, 노래 「서울노래」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2개 부문에 각각 당선되기도 하였다.
1948년 천주교관계 희곡 「서학란(西學亂)」을 발표하였고, 1963년 장편소설 「에와의 자손들」을 발표하는 한편, 그의 교육좌표·교육관을 「새교육과 듀이즘」(1958), 「우리교육의 문제점과 새 교육의 비전」(1966) 등을 통하여 발표하기도 하였다. 1975년 한양대학교 퇴직 후 캐나다로 이민, 몬트리올에서 작고하였다.
저서로는 『국민 교육학』·『종교교육학』·『교육문화사』·『학생과 사상』 등 교육관계 저서와 『세계사대관』·『영국문화사』 등의 서양사관계 저술 및 「토인비연구」·「프랑스혁명이 사관에 끼친 영향」·「근대적 태도 발생의 역사적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