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권 13책. 목판본. 1732년(영조 8) 그의 아들 인환(寅煥) 등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2에 사(辭)와 시, 권3∼9에 서(書), 권10·11에 잡저로서 금수기문(錦水記聞), 권12에 잡저와 서(序), 권13에 기, 권14에 발(跋)·잠(箴)·명(銘)·상량문, 권15에 애사·축문·제문, 권16에 전(傳)·비(碑), 권17에 묘표·묘갈명·묘지명, 권18에 묘지명, 권19∼21에 행장, 권22·23에 가전(家傳)·실기(實記)·가세고사(家世故事)·밀암자서(密菴自序), 권24·25는 부록으로 연보·행장·묘지명·만사·애사·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문집에 수록된 시는 모두 356수인데 그 중 만사 51수를 빼면 305수이다. 이 가운데 이재의 아버지 현일(玄逸)이 영달해 서울을 오르내릴 때 그를 수행하면서 감회를 읊은 시도 적지 않다. 또한, 현일이 관직에서 쫓겨나 홍원(洪原)·종성(鍾城)·광양(光陽) 등지로 유배를 당하게 됨에 이재가 아버지를 수행하면서 쓴 많은 시는 풍진(風塵)에 찌든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서(書)는 100여명에게 한 223편이 수록되어 있다. 영남지방에서 구제밀찰(九祭密札: 구사당 김낙행의 제문과 밀암 이재의 편지라는 뜻)이란 말이 널리 퍼져 있으리만큼 이재의 서는 훌륭하기로 이름났다.
편지를 주고받은 인물 가운데는 정시한(丁時翰)·이만부(李萬敷)·권상일(權相一)·김성탁(金聖鐸)·이상정(李象靖) 등 저명한 학자들이 많다. 서에는 이기설(理氣說)·사칠설(四七說)·예설·경의(經義) 등에 관한 문답이 많아 이재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이재의 학문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는 서 이외에도 권11·12의 잡저편인 「금수기문」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태극설·이기설·수양론·인심도심설 등 순수한 학문적인 문제들에 관해 그가 읽고, 듣고, 느낀 바 등을 수집, 기록하고 있다.
또한, 권23의 「밀암자서」도 이재의 학문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이재 스스로 자신의 학문적 입장과 주장의 요지를 집약 정리한 것으로, 이재의 사상과 학문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