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헌문집』은 조선 중기 문신·학자 정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05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805년에 정염을 제향한 현주서원에서 간행되었다. 4권 2책의 구성으로, 권1에는 스승 정황과의 차운시, 독서시를 비롯한 한시가 수록되어 있고, 권2, 3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활동과 관련된 작품들, 서인(西人)을 변론하는 당색의 상소문, 가족들을 위한 묘도문자 등, 산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권4는 부록으로, 정염을 위한 묘도문자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문학과 사상의 동향을 보여 주는 문헌이다.
저자인 정염(丁焰, 15241609)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字)는 군회(君晦), 호(號)는 만헌(晩軒)이다. 정종석(丁終碩, 미상)의 아들이다. 재종형인 정황(丁熿 15121560)에게 수학했다. 1549년(명종 4)에 진사시(進士試), 1560년(명종 15)에 별시(別試)에 합격하여, 형조좌랑(刑曹佐郎), 예조정랑(禮曹正郎), 광주목사(光州牧使) 등을 역임했다. 정여립(鄭汝立)의 난 당시, 역당(逆黨)을 고발했다는 공으로 평난원종공신(平難原從功臣) 1등에 책록(冊錄)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서 창의(倡義)하여 남원(南原)을 수비했다. 사후, 1704년(숙종 30), 남원의 현주사(玄洲祠)에 제향되었으며, 현주사는 1761년(영조 37)에 현주서원(玄洲書院)으로 개칭되었다.
『만헌문집』의 편찬자인 정석구(丁錫龜, 17721833)는 정염의 후손이다. 자는 우서(禹瑞), 호는 허재(虛齋)이다. 세거지(世居地)인 남원에서 태어났다. 이석하(李錫夏, 미상), 송환기(宋煥箕, 17281807)에게 수학했다. 저서로 『허재유고(虛齋遺稿)』가 있다.
문집 말미에 있는 정석구의 「만헌집후지(晩軒集後識)」에 의하면, 정염의 증손인 정견(丁涀, 미상)이 전쟁(병자호란) 이후에 유고(遺稿)를 수집한 것을 후손 정필량(丁弼良)이 정리, 증보한 가장본이 있었으나 간행하지 못했다. 1800년(정조 24)에 후손 정석구가 자신의 스승 송환기에게 가장 원고의 산정(刪定)을 부탁하여, 동문(同門)인 정성중(丁聖仲, 본명 미상), 이중무(李仲茂, 본명 미상)와 교정해서 문집의 체재를 완성했다. 이를 1805년에 현주서원에서 목활자로 간행했다.
4권 2책의 구성이다. 10행 20자, 상하향2엽화문어미(上下向2葉花紋魚尾)의 목활자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는 부(賦) 2편, 시(詩) 150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의 형식은 오언절구와 칠언절구의 근체시(近體詩)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차운(次韻)과 영물(詠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우국원풍년(憂國願豊年)」은 애국애민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조호지목난(鳥呼知木暖)」은 숲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마치 봄이 왔음을 환희하는 것으로 우의(寓意)하며 계절적 정서를 읊은 작품이다. 「희우(喜雨)」에서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로 인해 초목들의 생기 있는 모습을 예찬하며 하늘의 은총에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이밖에 「독역계몽(讀易啓蒙)」·「독서지파심사(讀書只怕尋思)」·「위학변요성인(爲學便要聖人)」 등 독서 또는 학문적인 감회를 읊은 시가 관심을 끈다. 「차유헌운팔수(次游軒韻八首)」는 1547년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스승 정황(丁熿)의 귀양지에 방문하여 지은 차운시이다.
권2에는 책(策) 1편, 소(疏) 3편, 서(書) 6편, 잡저(雜著) 5편, 서(序) 2편, 기(記) 3편, 발(跋) 3편, 명(銘) 2편, 전(箋) 1편, 장(狀)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에서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인재 등용에 달려 있음을 역설하였다. 소의 「회재신원소(晦齋伸寃疏)」는 이언적(李彦迪)의 신원을 건의한 것이다. 「호남유생자명소(湖南儒生自明疏)」는 동인(東人)들이 최영경(崔永慶)의 옥사를 문제 삼아 이미 죽은 성혼(成渾)과 정철(鄭澈)을 탄핵하자 호남유림을 대표해 이를 변호한 상소문이다. 특히 성혼은 처음부터 옥사에 관여한 일이 전혀 없으니 무고(誣告)임에 틀림없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서(書)의 「답신부사(答辛府使)」는 오래 누적된 폐단으로 백성들의 불만이 많다고 지적하며, 대동법이 편리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잘 시행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그 시행을 격려하는 내용이다. 이 밖에 잡저의 「호천장문(犒天將文)」은 임진왜란 때 싸운 명나라 장수의 공적을 치하한 내용이다. 「사송록발(司訟錄跋)」은 김백간(金伯幹, 1516~1582)이 편찬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 소송서류 양식집 『사송유취(詞訟類聚)』의 발문이다.
권3에는 상량문(上樑文) 3편, 축문(祝文) 6편, 고문(告文) 4편, 제문(祭文) 18편, 비문 1편, 묘갈명 1편, 묘지명 4편, 행장(行狀) 1편, 전(傳)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옥산소옥상량문(玉山小屋上樑文)」은 남원 옥산의 자택에 대한 상량문인데, 변려체(駢儷體)의 서문이 없이, 육위송(六偉頌)만이 수록되었다. 고문은 임진왜란의 의병장 활동 당시에 출병을 고한 글들이다. 제문 등의 묘도문자는 유희춘(柳希春, 15131577), 기대승(奇大升, 15271572) 등 당대 석학, 동생 정육(丁焴), 형 정약(丁爚), 사촌형이자 스승인 정황 등 가족의 것이다. 1편의 비문은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 1558~1619)의 송덕비이다.
권4는 부록으로, 정염의 세계(世系), 정염을 위한 만사 13수, 제문 5편 및 묘지·행장·유사·사적, 현주서원의 상량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문학과 사상의 동향, 임진왜란 의병장의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