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仁宗)은 1544년(중종 39) 11월 15일 중종(中宗)이 승하하자, 다음날인 11월 15일 즉위하였다./* 전문가 자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중종이 11월 15일에 승하하였다면, 다음날은 11월 16일입니다. 따라서 '중종의 사망일'과 ‘인종의 즉위일’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종의 즉위일이 11월 15일인지, 중종 승하 후 일주일 후인 20일인지도 별도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듬해인 1545년 7월 1일 승하하여, 총 7개월 간 재위하였다. 인종 사후 일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외가 · 처가 및 가까운 신하들이 큰 희생을 겪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왕에 대한 존숭 관념(尊崇觀念)이 엷어져 실록 편찬을 위한 계획조차 수립되지 않았다. 1546년(명종 1)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 시 함께 편찬되어 4년 후에 완성되었다.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관원은 다음과 같다. 감춘추관사로 심연원(沈連源), 지춘추관사로 윤개(尹漑) 등 5명, 동지춘추관사로 박수량(朴遂良) 등 10명, 편수관으로 홍담(洪曇) 등 14명, 기주관으로 박영준(朴永俊) 등 3명, 기사관으로 이억상(李億祥) 등 19명 모두 52명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인종실록』은 조선 후기의 다른 실록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그러나 『인종실록』은 『중종실록』 편찬에 부수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외형적 모습도 특이한 점이 있고, 내용 면에서도 소략한 점이 많다.
체재상으로 보면, 원년 1월부터 기록이 시작되었으나 즉위년(1544) 11월과 12월의 기사는 『중종실록』에 수록되어 있다. 8개월 간(윤정월 포함)의 기록은 4개월씩 구분되어 2권으로 분권되어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제1권은 주로 중종의 죽음에 따른 제반 조치 및 왕의 진선(進膳)에 관한 대간 · 의정부의 상계와 홍언필(洪彦弼) · 이기(李芑) 등의 복상(卜相)에 관한 대간의 반대 활동 사항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2권은 왕의 경연(經筵) 참여와 그곳에서 논의된 국정, 대간의 시정 상계, 그리고 국왕의 신병 문제 등이 주된 내용이다.
『인종실록』은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특히 을사사화를 전후한 사실의 왜곡이 심하다. 이 부분의 실상은 『선조실록(宣祖實錄)』의 앞부분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각 권에는 5, 6개의 사론(史論)이 실려 있는데, 주로 관료들의 신상에 관한 포폄(褒貶) 내용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실록에 기록된 세주(細註)는 사건의 전말 · 보충 설명 · 용어 해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인종실록』은 소문 및 외교 문서의 일부를 전재한 특징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