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점자는 6점(세로로 3점, 가로로 2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그림 1) 이 여섯 개의 점을 조합하여 64개의 점형을 만든다. 따라서 점자는 많은 점형으로 이루어지고, 그 각각의 점형에 의미가 부여된 문자이다.
63개의 점형을 초성(첫소리)자음 13자, 종성(받침)자음 14자, 모음 21자, 약자 27자, 약어 7개, 숫자, 문장부호 등에 배정하여 사용한다. 64개의 점형 중 하나는 점을 하나도 찍지 않은 빈칸으로,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우는 데 사용된다.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맹인 디디무스(Didymus)는 최초로 나무에 글자를 조각하여 사용했다. 1651년 독일 루렌부르그의 하스도퍼(G. Harsdorffer)는 나무판자에 초를 입힌 파라핀 서판에 글자를 새겨서 사용했다. 그 밖에 끈에 매듭을 지어 글자로 사용하기도 했고, 두꺼운 종이에 핀으로 찔러 글자 모양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최초의 맹학교를 설립한 프랑스의 아우이(V. Hauy)는 두꺼운 종이에 철필로 눌러 쓴 선(線)문자를 만들어 가르쳤고, 미국의 맹교육자 하우(S. G. Howe)는 보스턴 선문자(Boston line type)를 만들어 가르쳤으며, 영국의 맹교육자 문(W. Moon)은 문식문자(Moon type)를 고안하여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부터 맹인들이 죽력(竹曆)을 사용하였다. 약 20㎝ 길이의 대나무 가지에 금을 이리저리 파서 크고 작은 달과 절기, 각 달의 월건(月建), 초하루의 일진(日辰) 등을 표시하여 사용하였다.
프랑스의 육군 장교 바르비에(C. Barbier)는 전쟁터에서 어두운 밤에 군사용 작전 명령문을 읽을 수 있는 야간문자(ecriture nocturne)를 고안하였다. 바르비에는 12점(세로로 6점, 가로로 2점)으로 이루어진 야간문자가 일반 사람들이 읽기 어려워 군사용으로는 실패했지만, 맹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파리맹학교에서 야간문자를 시범하였다.
이때 파리맹학교에 재학 중이던 맹소년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는 야간문자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세로로 6점 배열이 손가락 끝으로 지각하기에는 너무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세로로 3점, 가로로 2점인 6점 점자를 창안하였다. 그는 1824년에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제자(製字)하였고, 1829년에 자신의 문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837년에 점자를 더욱 수정 · 보완하였다.
당시 파리맹학교의 정안인(正眼人) 교사들은 점자가 일반 묵자(墨字)의 모양과 달라 문자로서는 가치가 없다고 반대하면서 학교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파리맹학교 학생들이 몰래 점자로 사용하여 공부했고, 이들은 점자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보다 성적이 좋았다. 이로써 점자의 유용성이 입증되었고, 파리맹학교에서는 점자를 공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이것은 루이 브라유가 점자를 발명한 지 30년 후였고, 브라유가 죽은 지 2년 후인 1854년의 일이었다. 파리맹학교에서 점자를 맹인의 문자로 공인했다는 것은 점자가 세계 맹인의 문자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점자가 세계 여러 나라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혼란이 있었다. 미국에서 점자를 채택하는 과정에 찬반 논쟁이 치열하여 오랜 혼란기를 겪어야 했다. 미국 맹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우(S. G. Howe)는 자신이 만든 선문자를 사용하게 하고 점자를 철저하게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과오”를 범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뉴욕맹학교 교장이었던 웨이트(W. B. Wait)는 1868년에 뉴욕 점자(New York point; 4점 점자)를 창안하였고, 퍼킨스맹학교 음악교사였던 스미스(J. L. Smith)도 미국점자(American braille)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미국에서 여러 가지 점자와 선문자가 혼재하여 사용됨으로써 미국 맹인들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들 맹인용 문자들 사이의 치열한 투쟁이 있은 후, 결국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브라유 점자의 우수성이 입증되어 점자의 통일을 보게 되었다. 당시 점자에 관한 논쟁이 치열하였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점 전쟁(The war of dots)’이라고 했다.
또한 점자의 약자를 제자하는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 사이에 ‘약자 전쟁(The war of contractions)’이 벌어졌으나, 1932년에 영국과 미국이 189개의 약자를 포함한 표준 영어점자(Standard English braille)에 합의 · 서명함으로써 영어점자의 통일을 가져왔다.
평양에서 맹교육을 시작한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이었던 홀(R. S. Hall) 여사가 1898년에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평양점자)를 창안하고 맹여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평양점자는 4점 점자였고, 자음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았으며, 자모 중 일부를 2칸으로 제자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점자로 정착되기에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평양점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점자이었고, 약 28년 동안 맹인용 문자로 중요한 역할을 다했다.
조선총독부는 1913년에 제생원을 설립하고 일본의 6점 점자인 ‘훈맹점자’를 가르쳤고, 이를 배운 맹인들은 6점 점자가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그의 제자들은 1920년에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한글점자 연구를 시작하여 1923년에 ‘3-2점자’(자음 3점, 모음 2점)를 제정하였다. 그러나 3-2점자는 자음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아 다시 연구를 계속한 결과, 박두성은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훈맹정음은 매우 독창적으로 창안되었다. 예를 들면, 일본점자는 브라유의 ‘a, b, c, d, i’의 다섯 자를 일본점자의 모음으로 그대로 사용했으나, 우리나라 훈맹정음은 독창적인 구조로 창안되었다. 즉, 훈맹정음은 두 가지 원리에 의하여 제정되었다.
첫째, 기본 점의 원리를 사용하였다. 즉, 초성 ‘ㄱ, ㄴ, ㄷ’은 4점을, ‘ㄹ, ㅁ, ㅂ’은 5점을, ‘ㅅ, ㅈ, ㅊ’은 6점을, ‘ㅋ, ㅌ’은 1-2점을, ‘ㅍ, ㅎ’은 4-5점을 기본 점으로 하여 제자하였다.
둘째, 대칭의 원리를 사용하였다. 즉,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열 자를 두 자씩 모양을 반전시켜 제자하였다.
점자는 옆으로 풀어쓰는 특성 때문에 자음의 초성과 종성이 서로 다르므로 초성과 종성을 좌우 또는 상하로 대칭 이동시켜 모양을 그대로 살리면서 제자하였다. 즉, 초성 ‘ㄱ, ㄹ, ㅂ, ㅅ, ㅈ, ㅊ’을 각각 좌측으로 이동시켜 종성 ‘ㄱ, ㄹ, ㅂ, ㅅ, ㅈ, ㅊ’으로 제자하였고, 좌우 이동이 어려운 자음은 아래로 1점씩 이동시켰다. 예를 들면, 초성 ‘ㄴ, ㄷ, ㅁ, ㅋ, ㅌ, ㅍ, ㅎ’을 1점씩 아래로 이동시킨 것이 종성 ‘ㄴ, ㄷ, ㅁ, ㅋ, ㅌ, ㅍ, ㅎ’이다.
이 두 가지 원리를 사용하여 제자한 훈맹정음은 매우 독창적이고 합리적이므로 배우기 쉽다.
광복 이후 한글을 국어로 사용하게 되자, 국어 자체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한글점자도 정비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1947년 서울맹학교 교사 이종덕은 이중모음과 약자 · 약어를 제자하였고, 한글점자 외에도 수학점자, 과학점자, 점자악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제생원 맹아부에서 사용하던 수학점자, 과학점자를 정리하였고, 점자악보도 외국에서 들여와 사용하였다. 그러나 서울맹학교에 중등과와 사범과가 설립되면서 교과서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한글점자 뿐만 아니라 수학점자, 과학점자, 점자악보의 기호도 늘려야 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1982년 ‘한국점자통일안’이 나오게 되었고, ‘한국점자통일안’에는 한글점자의 일부를 개정하였고, 수학점자, 과학점자, 점자악보의 수를 고등학교 수준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1994년에는 한국점자연구위원회의 연구 결과 ‘개정 한국점자통일안’이 나오게 되었다. ‘개정 한국점자통일안’의 중요한 특징은 한글점자 부문에서 문장부호를 물음표, 감탄표만을 사용하던 것을 모든 문장부호를 사용하도록 했고, 동일한 글자가 이중으로 표기되는 것이 많아 표준한글점자를 채택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규정을 마련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동일한 글자를 이중으로 표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또한 컴퓨터 점자기호와 점자국악보를 제정했으며, 그 동안 사용하던 수학점자, 과학점자 및 점자악보를 보완하였다.
한국점자연구위원회는 ‘개정 한국점자통일안’을 기초로 다시 연구를 하였고, 이를 문화체육부에서 1996년 1월 15일 ‘한국표준점자제정자문위원회’를 발족하여 심의한 결과, 1997년 12월 17일 ‘한국점자규정’을 고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6월 9일에는 ‘개정 한국점자규정’을 고시하였다. 2014년 한글맞춤법 개정 사항을 반영하여 한글 점자, 수학 점자, 과학 점자, 컴퓨터 점자, 국악 점자, 서양 음악 점자 부분에 걸쳐 점자 규정을 수정하였다.
한글점자는 묵자와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이 다르게 제자되었다.
둘째, 점자에서는 초성 ‘ㅇ’을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초성 ‘ㄲ, ㄸ, ㅃ, ㅆ, ㅉ’을 적을 때에는 앞의 ‘ㄱ, ㄷ, ㅂ, ㅅ, ㅈ’ 대신 된소리표를 적는다.
넷째, 부피를 줄이고, 읽기와 쓰기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27개의 약자와 7개의 약어를 사용한다.
다섯째, 약자 ‘영’은 그 앞에 ‘ㅅ, ㅆ, ㅈ, ㅉ, ㅊ’이 올 때에는 ‘성, 썽, 정, 쩡, 청’이 된다.
여섯째, 모음 겹글자 ‘얘’는 ‘야+이’가 아니라 ‘야+애’로, ‘위’는 ‘우+이’가 아니라 ‘우+애’로 쓰고, 모음 겹글자 ‘왜’는 ‘오+애’가 아니라 ‘와+애’로, ‘웨’는 ‘우+에’가 아니라 ‘워+애’로 쓴다.
일곱째, 점자는 모아쓰지 않고 풀어쓴다. 예를 들면 ‘국’을 ‘ㄱ, ㅜ, ㄱ’으로 적는다.
맹인들에게 점자의 공급을 늘리기 위하여 전 세계적으로 점자의 기계화가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처음에는 종이에 점자를 인쇄하여 점자책을 생산하는 기계로 점자제판기와 인쇄기를 개발했다. 점자제판기는 아연판에 점역하여 그 아연판 사이에 종이를 넣어 인쇄기로 점자를 출판하는 것이다. 이에는 행간점자(inter-line braille)와 점간점자(inter-point braille)가 있다.
전자는 점자의 행과 행 사이 반대면에 점자를 찍어 종이의 양면에 인쇄하는 방식인데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다. 점간점자는 점과 점 사이의 반대면에 점자를 찍어 종이의 양면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점자복사기인 서모폼 머신(Thermoform machine)은 점자를 쓴 종이를 서모폼 안에 놓고 그 위에 플라스틱 종이를 얹어 열을 가함으로써 복사하는 기계이다. 그러나 이 기계는 현재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전자점자기(electronic braille display)의 개발로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점자도서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기를 ‘점자정보단말기’라고도 하는데,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점자알 크기의 핀(금속이나 나일론)들이 표면으로 올라와 점자를 만든다.
이 기기를 사용하여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정보나 디스크에 있는 정보를 전자점자로 읽은 후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지금까지의 점자는 사라지고, 다음 줄에 해당하는 점자가 나타난다. 이 기기는 글자를 읽어주기도 하고, 녹음도 할 수 있는 일종의 노트북 컴퓨터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전자점자기로는 ‘한소네’가 있고, 이 기기를 사용함으로써 맹인들의 정보접근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전자점자기를 사용함으로써 종이로 출판하는 점자책의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서를 점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시각장애 학생이나 직업에 종사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기기의 발전으로 힘들고 비효율적이며 지루한 점자판이나 점자타자기를 사용한 손 점역(hand transcription)과 제판기를 사용한 인쇄 방식에 의존하는 일이 줄어들어 점자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고, 점자프린터, 전자점자도구 등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한글점역소프트웨어의 개발로 입력된 내용을 점역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점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컴퓨터의 키보드를 사용하여 내용을 입력하고 점역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점역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 그리고 관련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묵자를 쉽게 점자로 전환하여 사용할 수 있고, 스캐너로 묵자를 입력할 수 있게 되어 점자의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다.
미국에서는 ‘미국장애인법’ 그리고 영국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인정하여 신문, 인터넷 등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연구를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전자도서관이 활성화되면 점자의 사용이 보다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적으로 점자책 30벌 이하를 점역할 때에는 점자프린터를 사용하고 30벌 이상을 출판할 때에는 점자제판기로 점역하여 인쇄한다.
아연판을 사용하여 점자도서를 출판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독자의 요구나 시장의 수요를 조사한다. ② 제판할 도서를 확인한다. ③ 출판계획서를 작성한다. ④ 점역사를 선정한다. ⑤ 편집하고 점역하는 데 따른 문제점에 관하여 협의한다. ⑥ 아연판에 제판한다. ⑦ 제판된 초벌의 내용을 교정한다. ⑧ 교정한 내용을 보고 아연판을 교정한다. ⑨ 인쇄한다. ⑩ 인쇄된 도서를 제본한다. ⑪ 출판 보고서를 작성한다. ⑫ 점자도서를 보급한다.
점자를 보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장애 학생이나 중도에 실명한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를 가르치는 것이다.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유치원에서부터 점자교육을 실시하는데 처음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 약자와 약어, 숫자, 문장부호 등을 가르친다. 중도에 실명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시각장애인 재활센터에서 점자를 가르친다.
또한 점자를 보급하는 중요한 기관은 시각장애인 도서관이다. 훈맹정음을 창안한 박두성은 1931년부터 점자도서를 출판하여 대출하기 시작했고, 1940년 이후에는 인천에서 조선맹인사업협회를 설립하고,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통신교육과 도서관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그 자신이 점역한 아연판도서와 점자도서는 시조 외우기 등 약 700여 권에 달했다.
그 후 시각장애인 도서관으로는 국제맹인원조고문회가 1959년에 한국맹인도서관을 설립 · 운영하였으나, 국제맹인원조고문회의 해산과 함께 1968년에 폐관되었다. 그 밖에도 1969년에 설립된 한국점자도서관을 비롯하여 대구대학교점자도서관, 부산시각장애인도서관,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의 점자도서관 등이 있으며, 1990년 이후에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이 설립되어 각 도에 시각장애인도서관이 설립되었다.
2007년 5월 22일에는 국립중앙도서관 내에 국립장애인도서관 지원센터를 설립하여 점자 보급에 힘쓰고 있다.
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는 점자도서를 출판하는데 많은 예산이 들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제작하기 쉬운 전자도서의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대구대학교 점자도서관에서는 시각장애 학생들의 점자교과서를 출판 · 보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