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년(영조 47) 작. 197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업원은 조선시대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가 머물던 승방으로, 서울 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한 지봉인 동망봉(東望峰)에 위치한 청룡사(靑龍寺)의 전신이다.
조선 건국 후 이제현(李齊賢)의 딸이자 공민왕비인 혜비(惠妃)가 망국의 슬픔을 안고 이 절에 있었으며, 1차 왕자의 난 뒤에 세자 방석의 누나인 경순공주가 머무르기도 하였던 곳이다.
세조 때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날 때 이 절의 우화루(雨花樓)에서 애끊는 이별을 하였다. 그 뒤 송씨는 여승이 되어 이곳에서 가까운 동망봉에 초가 암자를 마련하고 조석으로 영월쪽을 바라보고 단종을 추모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실제로 정순왕후가 살아 있을 때 정업원은 창덕궁에서 멀지 않은 성안에 있었으며, 후세에 와서 정업원이 성안이 아니라 동대문 밖에 있었다는 민간의 구전을 따라 영조가 현 위치에 비를 세웠다.
또한 정순왕후가 매일 오르던 산봉우리에는 ‘東望峯(동망봉)’이란 세 글자를 암각으로 새겨 당시의 사실을 기렸다. 그러나 근래에 채석장이 되어 흔적이 없어지고 비각과 비석만이 청룡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의 총 높이는 218㎝, 비신 높이 124㎝, 너비 57㎝, 두께 29㎝인데, 방형의 받침돌과 옥개형의 머릿돌 재료는 화강암이고, 몸돌은 오석(烏石)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음양 모두 영조의 친필로 앞면에는 ‘淨業院舊基(정업원구기)’, 뒷면에는 ‘皇朝正德十六年 辛巳六月初四日後二百五十一年 辛卯九月初六日立 前後皆親書(황조정덕16년 신사6월초4일후251년 신묘9월초6일입 전후개친서)’라고 새겨져 있다.
또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 정면에는 “前峯後巖於千萬年 歲辛卯九月六日欽涕書(전봉후암어천만년 세신묘구월육일흠체서)”라 새긴 현판을 달았다. 비각은 무익공계 양식으로 팔작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