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병조참지, 장단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형원(馨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54년(명종 9)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평양(平壤)
주요 관직
승지|장단부사
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병조참지, 장단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형원(馨遠). 조맹걸(趙孟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수안(趙遂安)이고, 아버지는 조준(趙準)이며, 어머니는 원붕(元鵬)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3년(선조 16)에 주서(注書)를 지냈으며, 1591년에는 광주목사(廣州牧使)로 파견되어 외직에 근무하였다. 1593년에는 지제교(知製敎)로서 활동하였으며, 1595년에는 지평(持平)과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에 임명되었으나 각 기관의 업무 수행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하였다.

1599년에는 여러 부서에서 근무하였다. 사헌부의 지평·장령(掌令)에 임명되어 관리를 감찰하였으며,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서 성균관 유생을 지도하였고, 사옹원정(司饔院正)의 직책을 수행하여 궁중 음식을 관장하였다. 그리고 강화부(江華府) 백성 양택(梁澤)의 시부사건(弑父事件)에 대한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되었다가 처리 미숙으로 인한 책임을 지고 처벌되기도 하였다.

또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 동부승지(同副承旨)로서 외교문서를 처리하였으며, 사간으로서 언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600년(선조 33)에는 병조참지(兵曹參知)·승문원좌승지, 행호군(行護軍)을 역임하였다. 1602년에는 사은부사(謝恩副使)에 발탁되어 정사(正使) 정사호(鄭賜湖)·서장관(書狀官) 윤안국(尹安國) 등과 함께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605년에는 장단부사(長湍府使)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강신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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