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침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경주부윤,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헌지(獻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순창(淳昌)
주요 관직
병조참의
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경주부윤,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헌지(獻之). 현령 조유(趙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사문(趙斯文)이고, 아버지는 조지강(趙智崗)이며, 어머니는 강일우(姜一遇)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5년(중종 1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19년에 정언(正言)으로 조강(朝講)에 참석하여 법률의 잦은 개정, 경박한 풍속, 불공정한 현량과(賢良科) 시행 등에서 파급되는 제반 폐단을 지적하고 그 혁신을 주장하였다. 그 뒤 1523년 함경도 어사(御史)로 파견되어 민정(民情)을 살피고 현안 문제를 보고하였고, 이어 홍문관교리·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525년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에 임명되어 세자의 학문증진과 덕성 함양에 기여하였다. 조침은 최세진(崔世珍)·조익(趙翼)에 버금갈 정도로 이문(吏文)과 한어(漢語)에 밝았다. 특히 이문에 능통하였으며, 당시 한어로서 명성이 있던 사람은 윤개(尹漑)·심달원(沈達源)·김미(金亹) 등이고, 이문의 대가는 이봉(李芃)·윤계(尹溪)·강현(姜顯)·채세영(蔡世英)·조침(趙琛) 등이었다.

1530년에는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서 제사와 시호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그 뒤 1532년에는 장예원판결사에 특별히 제수되었으며, 호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534년에는 호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537년에는 경주부윤(慶州府尹)·병조참의의 직책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강신엽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