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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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나라에 보내는 조선의 사절 또는 그 사신의 총칭.
내용 요약

조천사는 조선시대 명나라에 보내는 조선의 사절 또는 그 사신의 총칭이다. 조선과 중국은 형식적인 사대를 원칙으로 전형적인 조공 관계를 맺었다. 중국의 정통 왕조인 명나라에 보내는 사행은 천조(天朝)인 중국에 조근(朝覲)한다는 의미에서 조천사라고 하였다. 해마다 정례사행으로 동지사, 정조사, 성절사, 천추사를 파견하였고,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임시사행을 파견하였다. 정사와 부사, 서장관을 비롯하여 통사, 의원, 서자관, 화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28일의 여정으로 주요 통과 지점은 서울-평양-의주-압록강-구련성-봉황성-심양-산해관-북경이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명나라에 보내는 조선의 사절 또는 그 사신의 총칭.
내용

조선시대의 대외 관계에서, 대중국 관계를 사대(事大)라 한 것과는 구별해 일본과의 관계를 교린(交隣)이라 하였다. 사대가 형식적인 면도 있었지만 주종적인 것이었다면, 교린이란 이웃 나라와 교섭한다는 대등한 관계임을 뜻한다.

한편, 조선에서는 전형적인 조공 관계였던 명 · 청 시대의 대중국 관계에서도 한결같은 중국관은 아니었다. 중국의 정통 왕조인 명나라의 경우는 전통적인 중국관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정복왕조(征服王朝)인 청나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주종적인 사대 관계를 맺은 것이지 자의적인 교섭은 아니었다.

따라서, 사행의 이름에 있어서도 명나라의 사행을 ‘조천사’라 한데 반해 청나라의 사행은 ‘연행사(燕行使)’라 통칭하였다. 조천사란 천조(天朝)인 중국에 조근(朝覲 :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뵘)하는 사행이라는 뜻이고, 연행사는 연경(燕京)인 북경(北京)에 간 사행이라는 뜻이다. 북경이 명대의 도성이었다면, 연경은 그 이전부터의 정복 왕조의 대중국 통치의 도성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조천사는 해마다 정례사행(定例使行)과 임시사행으로 나누어 파견하였다. 정례사행으로는 네 번이 있었다. 대부분 동지를 전후해 보내던 동지사(冬至使), 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축하하러 간 정조사(正朝使), 명나라의 황제나 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러 간 성절사(聖節使),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러 보냈던 천추사(千秋使) 등이었다.

또, 임시사행으로는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보냈던 사행인데 사은사(謝恩使) · 주청사(奏請使) · 진하사(進賀使) · 진위사(陳慰使) · 진향사(進香使) 등이 파견되었다. 이러한 사행은 대부분 명나라의 고마운 처사에 대한 인사, 임시로 통보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경사(慶事)나 황실의 상고(喪故)에 보냈던 사행이었다. 이 밖에도 원나라 때부터 시작해 사냥에 쓰는 매를 바치는 진응사(進鷹使), 주1를 받으러 간 역행(曆行) 등의 사행도 있었다.

사행의 구성은 정사(正使) 1원, 부사(副使) 1원, 서장관(書狀官) 1원, 통사(通事) 3원(上通事 2원, 堂上通事 1원), 의원(醫員) · 서자관(書字官) · 화원(畵員) · 압마관(押馬官 : 貢馬時에 한함.) · 수행원과 노자(奴子) 등 40여인으로 되어 있으나, 의종 이후에는 30인 내외로 되기도 하였다.

사행 횟수는 태조 7년간 56회, 태종 18년간 137회, 세종 32년간 198회, 성종 25년간 76회 등으로 나타나 점점 의례적인 형식을 갖춘 공식적인 사절 파견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행 일행은 품계에 따라 주2가 달랐으며, 노자는 호조주3에서 담당하였다. 다만 국내의 경유지에서는 해당 도에서 부담하였다. 그들 일행이 출발할 때에는 서울 북쪽 벽제에서 의주까지 사행이 간다는 주4을 보내어 미리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들 사행이 가지고 간 문서도 종별에 따라 달랐다. 그러나 대략 외교 문서로는 주5 · 주6 · 주7 · 주8 · 도강장(渡江狀) 등이 있었다.

왕환노정(往還路程)은 육로가 2,049리로 28일정(程)이었다. 주요 통과 지점은 서울-평양-의주-압록강-구련성(九連城 : 鎭江城)-봉황성(鳳凰城)-성경(盛京: 瀋陽)-산해관(山海關)-북경이었다.

수로(水路)는 5,660리였는데 그 중 육로 1,900리, 수로 3,760리였다. 통과 지점은 서울-선천-선사포(宣沙浦) 또는 안주 노강진(老江鎭)-철산-가도(椵島)-등주(登州)-북경으로 되어 있다.

사행은 중로연향(中路宴享)을 거쳐 북경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표 · 자문납정(表咨文納呈) · 홍려시연의(鴻臚寺演儀) · 조참(朝參) · 방물세폐납정(方物歲幣納呈) · 하마연(下馬宴) · 영상(領賞) · 상마연(上馬宴) · 사조(辭朝) 순으로 행사가 마련되었다. 그 기간은 일정하지 않았으나 대략 40일 정도였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통문관지(通文館志)』
「연행록선집해제」(황원구, 『국역연행록선집』 Ⅰ, 민족문화추진회, 1976)
「조선초기의 대외관계」(이현종, 『한국사』 9, 국사편찬위원회, 1981)
「조선전기 한중관계의 시론-조선과 명의 사행과 그 성격에 대하여-」(김구진, 『홍익사학』 4, 1990)
주석
주1

일 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따위를 날의 순서에 따라 적은 책.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에, 각 역참에 갖추어 둔 말. 관용(官用)의 교통 및 통신 수단이었다.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대동미와 대동목, 대동포 따위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 선조 41년(1608)에 두었다가, 고종 31년(1894)에 없앴다.    우리말샘

주4

중앙의 벼슬아치가 지방에 출장할 때, 그곳에 도착 날짜를 미리 알리던 공문.    우리말샘

주5

표문(表文)과 전문(箋文)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6

임금에게 아뢰는 글.    우리말샘

주7

조선 시대에, 중국과 외교적인 교섭ㆍ통보ㆍ조회할 일이 있을 때에 주고받던 공식적인 외교 문서.    우리말샘

주8

조선 시대에, 왕이 우리나라의 특산물을 중국의 황제에게 선물할 때, 특산물과 함께 그 내용을 기록하여 보내던 표문.    우리말샘

집필자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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