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변』은 1945년에 「길」, 「푸른 오월」, 「남사당」 등의 시 29편을 수록하여 매일신보사에서 간행한 노천명의 제2시집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썼던 친일시 9편이 초판본에 실려 있고, 그를 제외한 대다수의 시편은 고향을 시적 배경으로 하여 회고(懷古)의 정취를 안정감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생(生)에 대한 긍정과 성숙한 내면 의식을 보여준다.
노천명은 1911년 황해도에서 출생하여 1930년에 진명여고보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에 입학한 후 변영로, 김상용, 정지용 등에게 문학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시 습작을 시작했다. 1932년 『신동아』에 「밤의 찬미」를 발표해 등단한 후, 시 49편을 수록한 첫 시집 『산호림』을 1938년에 출판했다.
‘한국의 마리 로랑생’이라고 불리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던 노천명은 일제강점기 말에 친일 어용 문학 단체에서 활동하고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사 출판부에서 시집을 간행하는 등 친일문학 활동을 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부역자 처벌 특별법(1950.10)에 따라 군사 재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는 『산호림(珊瑚林)』, 『창변(窓邊)』, 『별을 쳐다보며』 등의 세 권의 시집과 『산딸기』, 『나의 생활백서』 등의 두 권의 수필집을 내고 지병을 얻어 1957년 46세의 이른 나이로 사망한다.
『창변』은 A5판으로, 1945년 매일신보사(每日新報社)에서 간행하였으며 한지(韓紙)로 인쇄되었다. 작자의 제2시집으로 서문이나 발문은 없다.
시 작품 「길」 · 「망향(望鄕)」 · 「남사당(男寺黨)」 · 「작별(作別)」 · 「푸른 오월(五月)」 · 「첫눈」 · 「장미(薔薇)」 · 「소녀(少女)」 · 「새달」 · 「묘지(墓地)」 · 「저녁」 · 「한정」 · 「수수○부기」 · 「촌경(村景)」 · 「잔치」 · 「추성(秋聲)」 · 「여인부(女人賦)」 · 「향수(鄕愁)」 · 「돌잽이」 · 「춘향(春香)」 · 「창변」 등 29편이 수록되어 있다.
첫 시집 『산호림』에서 보인 고독과 향수, 소박하고 섬세한 감각과 1930년대 신여성이라는 고고한 존재로서의 갈등, 고립의 자아 인식은 제2시집에 와서 고향이라는 현실 공간으로 집약되어 생(生)에 대한 긍정과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는 성숙한 내면 의식을 보여준다. 특히, 「남사당」, 「망향」, 「저녁」, 「돌잽이」 등과 같은 토속적인 시편에서 고향의 풍물, 풍경은 안정감 있게 회고(懷古)의 정취를 형상화하고 있고, 「창변」에서 다루는 인가(人家)의 풍경은 단란하였던 한 가족의 모습을 그렇지 못한 사물, 존재와 대비시켜 방랑과 망향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한편, 파시즘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부합하여 일본군의 승리를 찬양하거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승전의 날」, 「출정하는 동생에게」, 「진혼가」, 「흰 비둘기를 날리며」 등의 친일시 9편이 초판본에 실려 있다. 이를 통해 노천명이 조선총독부의 어용 문인 단체 조선문인협회에서 활동하는 등의 친일 행적이 주목되었다. 친일시는 후에 삭제된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푸른 오월」도 여기에 실려 있다. 내용은 “청자빛 하늘이/육모정 탑 우에 그린듯이 곱고/연못 창포닢에/여인네 맵시우에/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중략)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하늘 높이 솟는다./오월의 창공(蒼空)이여/나의 태양(太陽)이여”와 같다.
라일락의 향훈(香薰)과 풀냄새 가득한 전원 풍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첫 여름의 계절 변화 속에서 청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는 『별을 쳐다보며』(1953)에 개작되어 수록되는데, 연못의 창포잎과 여인네의 맵시로 그려진 첫 여름의 싱그러운 이미지가 ‘여인네 행주치마’로 바뀌어 개작에 실패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창변』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 25일에 간행되었고 친일시가 수록되어 있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면 작자 특유의 섬세함과 감각적인 표현, 생명력과 향수, 방랑의 관념이 유기적으로 드러나는 특색이 있고 제1시집에 비해 비애와 감상의 절제가 더욱 심화된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