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세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 중종 대 예조참의, 병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좌부승지 등을 지낸 문신.
이칭
정지(挺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평강(平康)
주요 관직
황해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
내용 요약

채세걸은 조선 전기 중종 대 예조참의, 병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생원시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사간원 정언으로 근무하면서 규찰 업무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체직되었다. 관직의 제수와 체직을 거듭하다가 문과 중시에 급제하면서 다시 관직에 서용되었다. 파주목사로 재직할 때는 지역을 잘 다스려 포상을 받았다. 참의 직과 관찰사 직을 거쳐 승정원 좌부승지까지 제수되었지만, 전력 문제 때문에 교체되었다.

키워드
정의
조선 전기 중종 대 예조참의, 병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좌부승지 등을 지낸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채세걸(蔡世傑)의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정지(挺之)이다. 임피(臨陂)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채효순(蔡孝順), 할아버지는 채담(蔡潭)이다. 아버지는 채자연(蔡子涓)이고, 어머니 문화유씨(文化柳氏)는 유효용(柳孝庸)의 딸이다.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소성수(召城守) 이순정(李順丁)의 딸이다. 삼형제 중 둘째이며, 형은 채세호(蔡世豪), 동생은 기묘사림(己卯士林) 중 한 명인 채세영(蔡世英)이다.

주요 활동

1507년(중종 2) 식년시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510년 문과 식년시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 제수받은 관직은 기록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1512년 사간원 정언으로 임명되었던 기록부터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간관(諫官)으로 주1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과오를 범하였다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주2되었다.

1515년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지만, 형조에서 심문당하는 일 때문에 서경(署經)을 할 수 없게 되어 바로 체직되었다. 제수와 체직이 반복되다가 1526년 문과 중시(重試)에 다시 입격하였다. 이때 채세걸의 파직 경력이 문제가 되었는데, 중종주3하도록 주4하였다. 이후 파주목사로 부임하여 고을을 잘 다스려 포상을 받았다. 계속해서 예조참의, 병조참의, 황해도관찰사, 충청도관찰사 등에 제수되었다. 형조참의를 거쳐 승정원 좌부승지까지 임명되었으나, 사간원에서 주5의 직임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올리자 교체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방목(國朝榜目)』
『중종실록(中宗實錄)』

논문

김우기, 「朝鮮 中宗後半期의 戚臣과 政局動向」(『大丘史學』 40, 대구사학회, 1990)
주석
주1

어떠한 사실을 자세히 조사하여 살핌.    우리말샘

주2

벼슬을 갈아 냄.    우리말샘

주3

죄를 지어 면관(免官)되었던 사람을 다시 벼슬자리에 등용하다.    우리말샘

주4

임금이 명령을 내림. 또는 그 명령.    우리말샘

주5

웃어른을 가까이 모심.    우리말샘

집필자
이규철(성신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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