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집은 초간본(初刊本)과 중간본(重刊本)으로 간행되었다. 초간본은 12권 5책의 목판본(木版本)이다. 초간본에는 1442년경 왕명(王命)으로 지어 올린 권제(權踶)의 서(序)와 안지(安止)의 발(跋)이 있고, 초간본의 권미(卷尾)에는 「출간제관원명기(出刊諸官員名記)」와 밀양부개간(密陽府開刊)의 간기(刊記)가 있다. 판심제(版心題)는 ‘춘집(春集)’으로 되어 있다. 현재 초간본의 완본(完本)은 전하지 않고, 고려대 만송문고(晚松文庫)에 영본(零本) 1책(권 10~13)과 성암고서박물관(誠庵古書博物館)에 영본 1책(권 1)이 전한다.
중간본도 12권 5책의 목판본이다. 초간본이 거의 유실(流失)되자, 변계량을 향사(享祀)하는 병암서원(屛嵓書院)의 유생(儒生)들이 초간본 1질을 찾아내어 교수(校讎)와 증보(增補)를 거쳐 1825년에 중간본으로 간행하였다. 중간본에는 중간서(重刊序)와 중간지(重刊識)가 첨부되어 있다. 현재 규장각, 성균관대 · 연세대 · 고려대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1937년에는 변계량의 17세손 변두성(卞斗星)이 대구에서 4권 2책의 석인(石印)으로 속집(續集)을 간행하였다. 속집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중간본과 합편(合編) 된 것도 있다.
이밖에 중간본의 필사본(筆寫本)이 규장각 도서에 있다. 1977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이조명현집(李朝名賢集)』에 수록하여 영인(影印)하였다.
원집 12권 5책, 속집(續集)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 권 12와 속집 권 1은 저자(著者)인 변계량의 시문(詩文)이고, 속집 권 4는 부록(附錄)이다.
원집 권 1~4는 여러 형식의 시(詩)가 섞여서 편차(編次)되어 있다. 권 1에는 사(辭) 2편과 시 118제, 권 2에는 시 127제, 권3에는 시 81제, 권 4에는 시 84제가 각각 실려 있다. 권 5는 문(文)으로 문체(文體)별로 나누어 편차되어 있다. 권5에는 시 · 서(序) · 문답(文答) · 설(說) 등 모두 13편이 실려 있다. 권 6은 모두 관각문자(館閣文字)이다. 권 12에는 비지류(碑誌類)와 명(銘) · 발문(跋文) 등 11편이 실려 있다. 이어 정척(鄭陟)이 지은 행장(行狀)이 부편(附編)되어 있다.
속집 권 1은 저자의 시문이다. 권 2~4는 부록으로서, 권 2에는 연보(年譜)와 「사제문(賜祭文)」 · 「병암서원봉안문(屛巖書院奉安文)」 · 「부곡제단상향문(釜谷祭壇常享文)」 등이 실려 있고 연보는 국조실록(國朝實錄)에 따라 작성한 것이다. 권 3은 태조 · 태종 · 세종 · 인조 실록(實錄) 가운데 변계량과 연관된 기록을 채집(採集)해 놓은 것이다. 속집 권미에는 변계량의 17세손 변두성이 지은 발문과 판권지(版權紙)가 첨부되어 있다.
『춘정집』의 특징은 다른 문집(文集)과 달리 불교와 도교와 관련한 글이 다양하게 수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춘정집』에는 왕명(王命)으로 제찬(制撰)한 비탑명(碑塔銘)과 사사로이 작성한 제문(祭文) 등의 전기 자료도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다.
『춘정집』 권 4에 실린 악장(樂章)과 권 6 · 7에 실린 봉사(封事)가 주목된다. 악장의 하나는 「자전곡(紫殿曲)」이다. 여기서는 임금을 향한 헌수(獻壽) · 경계(鏡戒), 군신(君臣)의 의리(義理)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산천단제악장(山川壇祭樂章)」으로, 풍운(風雲) · 뇌우(雷雨) · 산천(山川) · 성황(城隍)의 신에 대하여 말하였다. 다른 하나는 「선잠제악장(先蠶祭樂章)」으로, 왕후(王后)의 선잠(先蠶)에 대한 절차를 말하고 있다.
『춘정집』에 실린 봉사의 글은 시정(時政)에 대한 변계량 자신의 견해를 여러 차례에 걸쳐 임금에게 올린 것이다. 이를 통하여 조선 초기의 다난(多難)하였던 여러 정치적 사정과 사대부(士大夫)들의 정치의식을 알 수 있다. 봉사 중 「영락13년6월일봉사(永樂十三年六月日封事)」에서는 신조섭(愼調攝) · 기천명(基天命) · 광자방(廣資訪) · 근사대(謹事大) · 후민생(厚民生) · 어군신(御君臣) 등으로 조목(條目)을 나누었다. 그리고 임금이 스스로 조섭을 삼갈 것, 천명(天命)에 기초를 둘 것, 널리 자문(諮問)할 것, 사대(事大)를 신중하게 할 것, 민생(民生)에 유의할 것 등에 대하여 역설(力說)하고 있다.
변계량은 조선의 태종과 세종 양조(兩朝)에 걸쳐 오랫동안 대제학으로서 나라의 문한(文翰)을 주관한 문신(文臣)이자 대학자(大學者)이다. 그는 경사(經史)에 정통(精通)하고 학식이 고금(古今)을 통달하였다. 그리고 시문을 잘 지어서 사대교린(事大交鄰)의 사명(詞命)은 물론 나라의 문한과 왕실의 문서를 거의 도맡아 주관하였다. 그의 문장은 기교가 있고 모두 주옥 같은 수작이므로, 조선 초기의 시문학 연구에 있어서 값진 자료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변계량의 문장은 대구(對句)의 배열과 전후의 조응(照應)을 통해 형식미(形式美)를 갖추면서,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룬다. 동시에 실용문(實用文)으로서의 효용(效用)을 발휘하고 있다. 『춘정집』에 수록된 장편의 고체시(古體詩)는 모두 음조(音調)에 절주(節奏)가 있다.
그리고 그의 문장은 강건하면서도 운치(韻致)를 잃지 않아 여유 있는 시인의 풍도(風度)를 엿보게 한다. 또한 근체시(近體詩)는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지니고 있으며, 관각체(館閣體)의 나쁜 관습을 대체로 잘 극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