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충청남도 일대에 해당한다.
995년(성종 14)에 당(唐)나라의 10도(十道)를 본떠 편성한 도(道)의 하나이다. 당나라의 하남도는 황하 남쪽 지역을 편성한 것으로서 지금의 허난성〔河南省〕과 산둥성〔山東省〕, 그리고 안후이성〔安徽省〕 일부와 장쑤성〔江蘇省〕 일부에 해당한다. 고려의 하남도는 그 명칭을 차용한 것일 뿐이며, 지리적 조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신라 9주(九州)의 하나인 웅주(熊州)를 토대로 일부 영역을 조정한 것이다.
관내에 34현(縣)을 두고 이를 11개의 주로 편제하였다. 소속 관원으로는 절도사(節度使)가 공주(公州) 1곳, 도단련사(都團練使)가 운주(運州: 지금의 홍성) 1곳, 자사(刺史)가 아주(牙州: 지금의 아산)와 임주(林州: 지금의 부여군 임천면) 등 2곳이 있었다.
1018년(현종 9)에 지방제도 개편으로 계수관(界首官)이 설치되면서 청주목(淸州牧) 관할로 편성되었는데, 지주사(知州事)인 공주와 홍주(洪州: 運州), 현령관(縣令官)인 가림현(嘉林縣: 林州)이 관할하는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청주와 천안 관할 지역은 중원도(中原道)에 속해 있었다. 이후 1106년(예종 1)에 하남도는 관내도(關內道), 중원도와 더불어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로 개편되었다.
한편 ‘하남(河南)’이 특정 지명으로 사용된 예도 보인다. 917년(신라 경명왕 1)에 찬술된 「태자사낭공대사비(太子寺朗空大師碑)」에는 낭공대사 행적(行寂, 832~916)의 출신을 “경만하남인(京萬河南人)”으로 적고 있다. 비문이 신라 때 찬술된 것이고 대사의 속성(俗姓)이 최씨(崔氏)인 점에 비추어 하남은 신라 왕경(王京)의 별칭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975년(경종 1)에 찬술된 「고달원원종대사비(高達院元宗大師碑)」에는 원종대사(元宗大師) 찬유(璨幽, 869~958)의 출신을 “계림하남인(鷄林河南人)”으로 적고 있다. 찬유의 속성이 김씨(金氏)인 것에서 고려에서도 경주의 별칭으로 하남이 쓰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당나라의 하남도에 속한 하남부(河南府)가 동도(東都: 東京)로서 오경(五京)의 하나였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