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후 1988년, 1990년, 1998년, 2004년, 2015년에 각종 보수를 시행하였고, 2022년 정침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영양읍 소재지에서 31번 국도 영양로를 타고 남하하다가 왼쪽으로 지평길로 접어들어 감천교에서 반변천을 건너면 전답 너머로 바로 보인다. 건물들은 남서향하고 있으며, 앞에는 반변천, 뒤에는 갓등산을 끼고 있다. 반변천과 집 사이에는 전답뿐이고, 집 뒤의 숲 너머 산세도 완만하여 시야가 트인 입지이다. 예전에는 문 앞의 큰길로 남북을 오가는 빈객이 잇달았다고 한다.
대문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고 정면 왼쪽에서 두 번째 칸이 솟을대문이다. 문인방과 도리장여 사이에 파련형의 작은 화반을 받친 것이 보기에 색다르다. 대문 왼쪽에는 마굿간이 있고, 오른쪽에는 좁게 잡은 1칸에 아궁이를 설치하여 가장 오른쪽의 온돌방 1칸에 불을 넣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별도의 담장을 두른 영역에 학초정과 연지(蓮池)가 있고, 마당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에 정침이 있다. 사당은 없어졌다고 한다.
학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가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건물 왼쪽의 정면 1칸, 측면 2칸은 온돌방이고, 나머지 정면 2칸, 측면 2칸은 대청이다. 막돌기단 위에 온돌방 아래는 막돌을 쌓아 아궁이와 구들을 만들었으나, 대청 아래에는 초석(礎石) 위에 누하주(樓下柱)를 세웠다. 건물 사방에는 마루를 두르고 정면과 우측면에 계자각 난간을 설치하여 정자다운 외관으로 꾸몄고, 전면 우측 모서리에 마루로 올라서는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대청 위는 소로수장(小櫨修粧)으로 꾸미고 종보 위에 사다리꼴형 판대공(板臺工)을 크게 설치했는데 면 안쪽에 파련형(波蓮形) 초각을 더하였다. 대청 후면과 우측면 판벽에는 칸마다 울거미 판창을 쌍여닫이로 달았는데, 창 가운데에 중간 설주를 설치하는 조선 중기의 고식 기법을 보존하고 있다. 온돌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학초정 왼쪽 앞에 네모난 연지가 있다.
정침은 규모가 큰 ㅁ자집인데,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의 평면에서 정면에만 양쪽에 2칸씩이 길게 돌출하여 정면 9칸이 된 형태이다. 정침 정면의 9칸은 1칸 깊이의 3량가 맞배지붕집인데, 중앙의 중문간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고방, 외양간, 온돌방 등의 공간을 꾸몄고, 왼쪽은 사랑 영역이다. 사랑채에 속하는 왼쪽 3칸의 지붕은 나머지 6칸의 지붕보다 높게 솟아 구별되는데, 왼쪽 끝 사랑대청에선 보 방향 1칸이 다른 중문간보다 길게 설정되어 있다. 경사가 완만한 대지에서 사랑채와 중문간채보다 지붕을 높게 만든 좌우익사(左右翼舍)는 기둥이 높아 상부에 다락이 이어진다. 좌익사(左翼舍) 쪽 지붕 끝이 사랑채 지붕에 맞춰 좀 더 높게 들려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좌우익사와 안채 지붕은 ㄷ자로 꺾인 팔작지붕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정면 3칸의 안대청 위로는 5량가 가구가 노출되어 있다. 안대청 왼쪽에 건넌방과 웃방, 오른쪽에는 안방과 웃방이 있다. 안방은 앞뒤 두 칸 중 우익사에 한 칸이 걸쳐 있고 우익사(右翼舍)의 나머지 2칸은 큰 부엌이다.
학초정 및 정침은 삼수당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영양 반변천 옆 길을 따라 오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지역 경관의 하나로 인식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학초정 대청 창호의 중간 설주 등 조선 중기의 고식 기법이 남아 있고, 정침은 ㅁ자집 정면이 좌우로 돌출한 유형 중 규모가 큰 사례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