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례동 양동댁 ( )

주생활
유적
문화재
1663년, 조선시대 문신 지촌 김방걸의 중형인 순포 김방형이 안동 지례리에 지은 가옥.
유적/건물
건축 양식
ㅁ자집, 뜰집
건립 시기
1663년(현종 4)
건물 층수
단층
규모
3동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시도민속문화재(1985년 10월 15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내용 요약

지례동 양동댁은 1663년(현종 4) 조선시대 문신 지촌 김방걸의 중형인 순포 김방형이 안동 지례리에 지은 가옥이다. 후대에 유학자인 지곡 김정한과 수산 김병종이 살았고 임하댐으로 인한 수몰을 피하여 1988년 이건하였다. 정침과 사랑채는 중간 규모의 경상북도 ㅁ자집의 구성을 잘 보여주면서 안대청 우측의 고방과 상방 구성, 중문간 좌측의 마루방과 고방 구성 방식 등이 특징적이다. 온돌방을 둔 사당 또한 독특하다.

정의
1663년, 조선시대 문신 지촌 김방걸의 중형인 순포 김방형이 안동 지례리에 지은 가옥.
건립 경위

지례동 양동댁(知禮洞 良洞宅)은 순포(蓴浦) 김방형(金邦衡, 1618~1699)이 1663년(현종 4)에 경상도 안동 지례동(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에 지은 집이다. 김방형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다. 다만 그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1695)의 둘째 형이고 김방걸의 집인 지촌종택(芝村宗宅) 또한 지례리에 양동댁과 같은 해에 지었다고 한다. 동생 김방걸은 1660년(현종 1) 과거에 급제하였고,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있었던 1689년(숙종 15)에 서인(西人)과 대립하였으나,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출에는 반대하여 사직하였다. 이후 김방걸은 대사간(大司諫), 대사성(大司成) 등을 역임했으나 1694년(숙종 20)에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서인이 집권하면서 귀양을 간 곳에서 죽었다.

변천

훗날 양동댁에는 순포 김방형의 둘째 증손인 유학자 지곡(芝谷) 김정한(金正漢, 1716~1766)과 그 후손인 수산(秀山) 김병종(金秉宗, 1871~1931)이 살았다. 현재 사랑채에는 수산재(秀山齋)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특히 안동 임하댐 건설로 지례리가 수몰되어 1988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아래채에 화재가 나서 아래채를 다시 지었다.

형태와 특징

1988년에 옮겨 지으면서 서향으로 지었고 집 앞에 지곡제택(芝谷第宅)이라 표지석이 서 있다.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의 ㅁ자 주4에 사랑채가 붙어 있다. 정침 좌측, 즉 북쪽에는 一자집인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아래채가 동서로 길게 놓여 있는데, 원래 마굿간과 고방 등 부속 시설이 있던 곳이나 2010년대 후반에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하면서 거주 공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정침 우측에는 돌담을 별도로 두른 영역 안에 사당이 서향해 위치해 있다.

사랑채는 정면 2칸 규모이고 정침 중문간 오른쪽에 붙어 있는데 안채보다 좀 늦은 약 300여 년 전, 즉 18세기 초에 지었다고 한다. 중문간보다 한 칸 앞으로 돌출해 있고 중문간 지붕보다 높게 팔작지붕을 씌워 독립된 건물처럼 보인다. 실내에는 왼쪽에 사랑방, 오른쪽에 사랑대청을 각각 1칸 반 깊이로 꾸몄고, 사랑대청 뒤로 연결된 우익사(右翼舍)의 한 칸에 책방을 두었다. 전면과 우측 모서리에는 주2주1 난간을 둘러서 더 돋보이게 꾸몄고, 사랑대청 우측과 책방까지 난간 없이 쪽마루를 길게 이어 붙였다.

사랑채 왼쪽의 3칸에는 중문간과 창고로 쓰는 마루방, 모방이 차례로 들어선다. 마루방의 안마당 쪽 벽을 살짝 실내 쪽으로 물려 툇마루를 두고 툇마루 끝에 모방의 출입구를 내었다. 중문간을 들어서면 안채와 좌우익사(左右翼舍)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안채는 1칸 깊이의 3량가로 작은 규모이며, 정면 3칸의 안대청이 중앙에 있다. 안대청 왼쪽으로는 반 칸짜리 도장방 딸린 안방이 안채 1칸과 좌익사(左翼舍) 첫째 칸을 차지하고, 안방에 붙은 부엌과 통래간이 좌익사의 나머지 두 칸에 들어섰다. 이 부엌은 현재 입식으로 내부를 변경하였다. 안대청 오른쪽에는 고방이 있고 우익사 첫 칸에 상방, 다음으로 부뚜막 딸린 통래간이 책방 뒤로 이어진다. 우익사로 돌출한 상방 앞에는 안대청에 이어지는 쪽마루가 달렸다.

사당은 정면 2칸, 측면 1.5칸의 맞배지붕집이고 전면에 돌출한 마루를 달았다. 마루 뒤로 왼쪽은 1.5칸 깊이의 온돌방, 오른쪽에는 반 칸 깊이의 툇마루가 더 이어지고 1칸 깊이의 온돌방을 두었다. 한국전쟁으로 피난할 때 위패를 주3 현재 사당 안에는 위패를 모시지 않는다고 한다.

의의 및 평가

정침과 사랑채는 중간 규모의 경상북도 ㅁ자집의 구성을 잘 보여준다. 안대청 옆에 온돌방과 마루 깐 고방 또는 도장방을 앞뒤로 붙여 꾸미는 것은 경상북도 ㅁ자집에서 종종 볼 수 있지만, 이 집에서는 안대청이 1칸 깊이이다 보니 안대청 우측 전체를 고방 1칸이 차지하고, 그 앞의 상방 1칸이 완전히 우익사 쪽으로 넘어가 설치되었다. 중문간 왼쪽의 마루방과 모방의 구성도 유의할 만하다. 온돌방과 마루를 둔 사당 또한 독특한 사례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우원 편, 『경상북도 문화재도록』 2(동해문화사, 1995)
전국건축문화자산 자료조사 행사위원회, 『전국건축문화자산 8권: 대구 경북편』(’99건축문화의해 조직위원회, 1999)
『안동문화재대관』(안동시, 2007)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디지털안동문화대전(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

기타 자료

경상북도, 『경상북도 문화재 대장: 지례동 양동댁』
주석
주1

난간두겁대를 받치는, 짧고 가느스름한 기둥. 위는 구부정하게 내밀고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다. 우리말샘

주2

건넌방, 누각 따위의 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깐 난간이 있는 좁은 마루. 우리말샘

주3

신주(神主)를 무덤 앞에 묻다. 우리말샘

주4

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이우종(영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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