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동강목 판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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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강목 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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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순종 1)에 이항로(李恒老, 1792∼1868)의 제자 유중교(柳重敎) · 김평묵(金平默)이 함께 편찬한 편년체 역사서 『화동강목』을 간행하기 위하여 새긴 판목.
목차
정의
1907년(순종 1)에 이항로(李恒老, 1792∼1868)의 제자 유중교(柳重敎) · 김평묵(金平默)이 함께 편찬한 편년체 역사서 『화동강목』을 간행하기 위하여 새긴 판목.
내용

1,578판. 197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화동강목』의 완전한 서명은 『송원화동사합편강목(宋元華東史合編綱目)』이다. 940년(태조 23)부터 1367년(공민왕 16)까지 480년간의 『송사(宋史)』 · 『원사(元史)』와 『고려사』를 강목체(綱目體)로 서술한 역사서이다.

1852년(철종 3)에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이항로가 제자들에게 편찬을 지시하여 유중교가 940년부터 1288년(충렬왕 14)까지 편술하고 김평묵이 1289년부터 1367년까지 편술하여 1864년(고종 1)에 29권의 원고를 완성하였다. 이어서 김평묵이 편술 태도를 설명한 ‘발명(發明)’과 범례 · 편찬동기를 설명한 ‘서법(書法)’을 부록으로 엮어서 33권 33책으로 완성하였다.

1907년에 유인석(柳麟錫)의 주관으로 강원도 춘천(春川)의 가정서사(柯亭書舍)에서 유제원(柳濟遠)의 글씨로 책판을 만들어 간행하였으며, 판목은 본래 춘천의 가정정사에 보관되다가 일제강점기에 유모(柳某)가 일본인에게 저당을 잡힌 것을 여주의 부호 박모(朴某)가 인수하여 여주로 옮겨 보관하였다.

그 뒤 정해문(鄭海文) · 유제함(柳濟咸) · 유제항(柳濟恒) 등의 노력으로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鳳陽邑) 공전리(公田里) 장담(長潭)의 자양영당(紫陽影堂)으로 옮겼다.

판목의 크기는 세로 21.0㎝, 가로 33.0㎝, 두께 1.3㎝이며, 판광(板匡)은 사주쌍변(四周雙邊), 세로 19.0㎝, 가로 30.0㎝, 유계(有界), 10행 19자, 주쌍행(註雙行), 상하향2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판심(版心)에는 ‘화동강목’이라는 약서명(略書名)과 권차(卷次), 장차(張次)가 있다.

발(跋)은 ‘영력 261년(1907) 정미 3월 중휴일(永曆二百六十一年丁未三月中休日)’에 고흥(高興) 유중악(柳重岳)이 썼다. 원래 3,311판이던 판목은 유실로 인하여 1,578판만이 전존되고 있다. 현재 충청북도 제천시 자양영당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충북지역의 현존판목』(김영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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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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