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화엄경』으로 약칭) 번역한 권수에 따라 『80화엄경』, 『60화엄경』, 『40화엄경』으로 구분된다. 조선 후기에는 『80화엄경』이 읽혀졌으며, 이 경전에 의거해 일곱 장소에서 아홉 번 설법을 하는 칠처구회(七處九會)로 구성된 화엄칠처구회도가 제작되었다. 조선후기 화엄칠처구회도는 송광사, 선암사, 쌍계사, 통도사 등의 화엄칠처구회도가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의 화엄칠처구회도는 한 화면에 칠처구회의 설법장면을 그리고 각 설법회의 주존으로 노사나불을 표현하였다. 한 화면에 칠처구회를 그리는 방식은 중국 당대∼오대의 벽화와 불화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지만, 비로자나불을 대신해 노사나불을 주존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선 후기에 간행된 『화엄경』 해석서인 『화엄경소초(華嚴經疏抄)』 변상도와 조선 후기 팔상도(八相圖)의 화엄대법(華嚴大法) 장면의 영향이다. 화엄칠처구회도는 형식상 경전을 그대로 재현한 「송광사화엄경변상도」(1770년. 국보, 2009년 지정)와 화엄에 관음신앙을 결합한 「통도사화엄탱」(1810년. 보물, 2002년 지정)으로 나누어진다.
조선 후기에 화엄사상이 성행하면서 『화엄경』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불화가 제작되었다. 「송광사화엄칠처구회도」(1770년)는 경판을 보관하는 화엄전(華嚴殿)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이는 조선 후기에 발전한 화엄교학(敎學)과 화엄칠처구회도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송광사화엄칠처구회도」는 80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과 지상과 천상으로 오가며 설해지는 칠처구회의 복잡한 내용을 교리에 맞게 체계적으로 구성하였다. 화면 맨 아래에는 『화엄경』의 우주관을 반영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가 그려졌고 그 위로 지상설법과 천상설법에 걸쳐 설해지는 칠처구회가 상하단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하단 지상설법은 제1보리도량회(菩提道場會)를 중심으로 좌측에 제2,7,8회의 보광명전회(普光明殿會)가 있고 맞은편에는 제9서다림회(逝多林會)가 배치되었다. 상단 천상설법은 향좌측에 제3도리천궁회(忉利天宮會), 제4야마천궁회(夜摩天宮會)를 그리고 향 우측에 제5도솔천궁회(兜率天宮會), 제6타화자재천회(他化自在天宮會)를 그렸다. 『화엄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입법계품(入法界品)」은 제9서다림회와 속한 내용이기에 53선지식을 찾아 선재동자가 구법(求法) 장면은 제9회 아래에 그려져 있다. 「송광사화엄칠처구회도」은 이후 제작된 「선암사화엄칠처구회도」(1780년)와 「쌍계사화엄칠처구회도」(1790년)의 모본(模本)이 되었다.
「통도사화엄칠처구회도」(1810년)는 검은 바탕에 금선묘로 그려졌다. 표현기법만이 아니라 화면 구성도 「송광사화엄칠처구회도」와 전혀 다르다. 화면 상단 중앙에는 노사나불이 있고 그 좌우에 천상설법을 배치하고 지상설법을 중단에 배치하였다. 하단에는 중앙에 선재동자의 구법장면을 두고 좌우에 천수관음보살과 준제관음보살을 크게 그렸다. 전체 구성에서 보면 천수관음과 준제관음은 노사나불과 대등한 존재로 표현되었다. 「통도사화엄칠처구회도」의 봉안처는 선원(禪院)인 보광전이다. 조선 후기에는 선(禪), 교(敎), 염불(念佛)을 함께 수행하는 삼문수업(三門修業)이 강조되었다. 「통도사화엄칠처구회도」는 교로 대변되는 『화엄경』의 내용과 염불로 대변되는 관음보살을 그린 불화를 선원에 봉안함으로 시각과 공간을 결합한 삼문수업을 완성하였다.
『화엄경』을 교리에 맞게 체계적으로 구성한 「송광사화엄칠처구회도」와 『화엄경』에 관음신앙을 융합한 「통도사화엄칠처구회도」는 조선 후기에 발전했던 화엄사상과 삼문수업의 요체를 시각화한 자료로 국가유산의 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