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세운의 공을 시기하여, 왕지(王旨)를 위조해 안우·이방실·김득배로 하여금 정세운을 죽이게 하고 그 죄를 뒤집어씌워 모두 죽였다. 그리고 주1에서 돌아와 흥왕사(興王寺)의 행궁(行宮)에 거처하던 공민왕(恭愍王)을 시해하고자 하였다. 공민왕은 환자(宦者) 이강달(李剛達)의 기지로 변(變)을 면하였으나, 용모가 비슷한 안도치(安都赤)가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 변은 최영 등이 군사를 이끌고 행궁에 이르러 토벌함으로써 끝나게 되는데, 김용은 오히려 1등공신에 봉하여졌다. 곧이어 김용이 이 변을 주도한 사실이 발각되었고, 김용은 그 동안의 공로가 있다 하여 죽음은 면하였으나 주2에 귀양 가게 되었다. 다시 주3로 옮긴 뒤 사지(四肢)가 잘려 전국에 돌려지고 개성(開城)에 보내져 효수(梟首)되었다.
이 사건은 주4을 주축으로 구성된 공민왕의 측근 세력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과 균열이 결국 국왕 시해 시도로까지 비화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공민왕 측근 세력의 대다수가 살해되거나 제거되었고, 공민왕은 이들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새로운 정치 운영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연이어 발생한 덕흥군(德興君) 사건 등과 함께 공민왕이 신돈(辛旽)을 등용해 정국을 운영하게 되는 데 한 가지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