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침 필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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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침 필적
성수침 필적
서예
문헌
문화재
조선전기 학자 성수침의 행서 필적을 모아 엮은 서첩.
이칭
이칭
청송서(聽松書)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10년 01월 04일 지정)
소재지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안대로 398 (상대동, 대전시립박물관)
목차
정의
조선전기 학자 성수침의 행서 필적을 모아 엮은 서첩.
서지적 사항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필사본, 첩장, 1첩. 38.0×25.2㎝

내용

「성수침 필적(成守琛 筆蹟)」은 성수침이 당나라 가도(賈島)의 「숙촌가정자(宿村家亭子)」, 두목(杜牧)의 「등낙유원(登樂遊原)」, 이상은(李商隱)의 「상아(常娥)」와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전가(田家)」등 칠언시를 행서로 쓴 서첩이다.

표지에는 성수침의 호 ‘청송’을 붙여 ‘청송서(聽松書)’라고 쓰여 있다. 원래는 두루마리 형식의 권자본(卷子本)으로 되어 있던 것을 줄[行]에 따라 잘라 첩으로 개장(改粧)한 것이다. 이 서첩은 송명흠(宋明欽, 1705∼1768) 후손의 기증품으로, 송명흠의 아버지 송요좌(宋堯佐, 1678∼1723)의 ‘청은당(淸隱堂)’이란 인영(印影)이 안쪽 첫 면에 찍혀있다.

성수침은 이황(李滉, 1501∼1570)과 함께고법인 왕희지(王羲之) 서풍으로의 복귀를 주도했던 16세기를 대표하는 도학자이자 명필이다. 현재 그의 필적은 드문 편으로, 소자(小字)가 몇몇 전하고 있고 대자(大字)는 목판 글씨밖에 전하지 않는다. 이처럼 큰 글자로 쓴 작품이 현존하는 것은 매우 드문 예이며, 운필하는 속도에 따라 먹의 농담이 드러날 정도로 담묵(淡墨)을 즐겼던 그의 특징이 또한 잘 나타나 있다. 성수침은 유행서풍에 경도되지 않고 창고(蒼古)한 기풍을 추구했는데, 이 필적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참고문헌

『한국의 옛글씨』(문화재청, 예맥,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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