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중심으로 한 법화사상(法華思想)의 유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이불병좌상의 조성이다. 벽화나 회화로 조성될 경우 『묘법연화경』견보탑품(見寶塔品)에서 석가불의 영취산 설법과 다보불의 등장, 그리고 칠보탑 안에 나란히 앉은 모습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표현하지만 불상은 상징적으로 두 구의 불상만 나란히 배치한다.
『묘법연화경』이 중국에 소개된 것은 2세기경이지만 유행은 5세기경으로 이불병좌상 역시 북위시대 이후부터 활발히 조성된다. 중국의 3대 석굴인 운강석굴, 돈황석굴, 용문석굴을 비롯하여 병령사석굴, 공현석굴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불병좌상이 확인된다. 현재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소장된 북위시대 제작의 금동이불병좌상은 당시 북위 불상의 양식과 이불병좌상의 모습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에 비해 이불병좌상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시대의 청송 대전사(大田寺)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는 청동이불병좌상과 황룡사지(皇龍寺址) 출토 금동이불병좌상, 고려시대의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과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에 새겨진 이불병좌상 등 약 7점 정도가 확인된다.
더불어 785년∼794년 동안 발해의 수도로 5경 중 하나였던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옛터에서 8구 이상의 이불병좌상이 출토되었다. 동경용원부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琿春) 팔련성(八蓮城)에 위치하며 고구려시대에는 이 지역이 중국과 국경을 이루던 곳이었다. 동경용원부에서는 이불병좌상의 제작이 많은 반면, 5경 중 또 다른 한 곳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에서는 관음상을 주류를 이루고 있어 각 지역에서 유행하던 신앙과 사상적 특색이 결과적으로 불상 제작에도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