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7월 4일에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신곡리에서 태어났다. 홍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의 휘문중학교에서 수학했다. 휘문중학교 2학년 때 장발(張勃)의 영향으로 화가에 뜻을 품게 되었다. 1941년 3월 일본의 도쿄〔東京〕 데이고쿠〔帝國〕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44년 1월에 일본군에 징집당해 중국 전선에 투입되었으나 탈출하였다. 1945년 2월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명으로 제9전구 내에 중국군사위원회 지원으로 창설된 제1지대 제3구대에 참가했다. 중국 후난성〔湖南省〕 구이동〔桂東〕에서 한국임시정부의 광복군 상위(上尉)로 항일전투에 참가했다.
광복 후인 1946년부터 50년까지 홍성고, 휘문고, 경기여고, 동덕여중고의 미술교사로 재직했고 서울대, 홍익대 강사를 지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다시 군에 입대하여 1956년 5월까지 육군본부와 국방부에서 복무하였고, 이후 교직에 복직하였다. 1960년부터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1980년 경희대학교 사범대 학장으로 취임했으며 1987년에 정년퇴임하였다.
1950년 5월 4일부터 11일까지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제1회 개인전을 경기여중의 후원으로 개최하였다. 이후 1991년의 고희전까지 총 28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50년대의 군복무 중에도 개인전을 지속하여 ‘군인화백’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1956년, 1958년, 1959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하였다.
그의 화풍은 산과 전원, 도시, 부두, 어선 등 풍경을 소재로 다룬 구상화가 주를 이루었고, 1960∼63년에는 비구상적 표현도 시도했다. 화가는 자신이 고흐와 마티스의 화풍, 몬드리안의 추상 이전의 양식에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대표작으로는 한 장소를 10년 이상 반복하여 찾아가 그린 작품인 「남산에서 보이는 서울 풍경」과 「덕현리 풍경」이 있으며, 서울 풍경화만을 모아서 1984년에 전시하기도 했다
최덕휴는 미술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단체와 기구를 운영했다. 1954년에 미술교육연구회를 조직하여, 덕수궁 박물관에 ‘교사를 위한 미술교육 정기강좌’를 개설했는데, 이것은 국내 최초의 미술교사 교육 강좌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국제미술교육협회 한국위원회(INSEA-Korea)의 사단법인 창립 초기의 이사장으로 1966년에 취임하여 1991년까지 이 기구를 이끌었다. 국제미술교육협회 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 산하 단체로 해외 미술교육 참관과 학생미술작품의 해외교류를 주관했다.
논문으로 「전문미술교육의 방안연구」, 「단기고등교육기관의 개선원칙에 대한 연구-미술교과과정을 중심으로」이 있으며, 『최신 중학미술』(양문사), 『최신 미술:인문계고등학교』(양문사)의 미술교과서를 저술했고, 편저로 『현대미술』(문화교육출판사, 1958)이 있다.
작가의 작품은 경희대학교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되었으며, 2003년 경기도 용인시에 최덕휴기념관이 건립되었다.
1951년에 무공훈장 화랑장, 1984년에 서울시 문화상을, 1987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 1991년 삼일문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