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정(李孝貞)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간호부양성소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간호부로 일하였다. 함흥 제혜병원, 캐나다선교회 보건부, 영등포 도화병원, 국립마산결핵요양원에서 30여 년간 간호사 생활을 하였다. 1957년 한국 최초로 나이팅게일기장(記章)을 수상하였다.
1897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출생하여 1924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간호부양성소 산파학과를 졸업하였다. 세브란스 병원 간호부양성소는 1906년 9월에 설립되어 1920년대 초반 해부학 시간에 진흙으로 뼈의 모형을 제작하는 등 수준 높은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효정이 졸업한 후인 1924년 9월 조선총독부는 세브란스 병원 간호부양성소를 간호교육기관으로 지정하였다. 1925년에는 수업 연한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였다.
이효정은 세브란스병원 간호부로 근무하던 1926년 11월에 동료인 김덕은(金德恩), 정도은(鄭道恩)과 함께 병원을 대상으로 분규를 일으켰다. '기숙사 보모의 불공평한 태도 개선, 기숙음식 개선, 밤 근무 간호원의 증원, 간호원이 환자 음식을 나르는 신 규정 폐지'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병원에 제출하였다. 같은 해 12월 21일 병원 이사회는 이효정 등에게 면직을 명령하였다. 간호부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이 움직임은 세브란스 병원 간호부양성소 학생 4명의 정학으로 이어졌고,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1927년부터 이효정은 다시 세브란스 병원 간호부가 되어 4년간 일하였다. 이후 함흥 제혜병원, 캐나다선교회 보건부, 영등포 도화병원, 국립 마산결핵요양원 등에서 30여 년간 간호사로 근무하였다. 6 · 25 전쟁 때는 마산에 북한 인민군이 들어와서 병원 직원이 철수하였을 때, 혼자 병원에 남아서 환자를 간호하기도 하였다. 이효정은 평생 간호실무자로 일하다 1961년 은퇴하였다. 1965년 9월 24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자택에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