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서양의 4원소설을 ‘사행설(四行說)’이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에 소개하였다. 물 · 불 · 공기 · 흙의 4원소를 화(火), 기(氣), 수(水), 토(土)의 사행으로 설명한 것이다. 마테오 리치의 사행설은 『건곤체의(乾坤體義)』의 「사원행론(四元行論)」에 상세히 정리되어 있으며, 그가 제작한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도 수록되어 있다. 「곤여만국전도」에 수록된 내용은 『건곤체의』의 「사원행론」을 요약한 것으로, 함께 수록되어 있는 〈구중천도(九重天圖)〉와 함께 ‘삼제설’의 내용을 요령 있게 보여 주고 있다.
마테오 리치는 화 · 기 · 수 · 토의 사원행(四元行)이야말로 불상생(不相生) · 불상유(不相有)한 존재이며. 이들의 결합을 통해 우주 만물이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는 사행의 성정(性情)을 기초로 우주 내에 사행의 적절한 위치를 설정하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사행의 위치를 서양 우주론의 도식과 합치하고자 하였다. 그에 따르면 ‘화’는 지극히 가볍고, ‘기’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수’는 ‘토’에 비해 가벼우며, ‘토’는 지극히 무거운 것이었다. 따라서 가장 가벼운 ‘화’는 우주의 가장 바깥에 위치하고, 가장 무거운 ‘토’는 우주의 중심의 위치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구이다. ‘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수’는 지구 위에 실려 있다. 이렇게 보면 ‘토’와 ‘수’로 이루어진 지구와 ‘화’로 이루어진 우주 외곽의 하늘 사이에 넓은 공간이 자리하게 되는데, 바로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 ‘기’였다.
마테오 리치의 ‘삼제설’, 또는 ‘삼역설’은 ‘기’로 이루어진 공간을 상 · 중 · 하의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눈 것이다. 외곽의 ‘화’와 가까운 상역(上域)은 매우 뜨겁고, 아래의 ‘수 · 토’에 가까운 하역(下域)은 태양빛을 받아 따뜻하고, 그 가운데 위치한 중역(中域)은 매우 한랭하다는 것이다. 「곤여만국전도」의 〈구중천도〉에서는 상 · 중 · 하를 각각 ‘열역상기(熱域上氣)’, ‘냉역중기(冷域中氣)’, ‘난역하기(煖域下氣)’로 표현한 바 있다.
삼제설이 조선 사회에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논설이 이규경의 「삼제변증설(三際辨證說)」이다. 이규경은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건곤체의』, 『태서수법(泰西水法)』, 방중리(方中履)의 『고금석의(古今釋疑)』 등의 서적을 활용하여 ‘삼제설’의 내용을 소개한 다음 그 논리적 문제점을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