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지(觀象志)』의 저자는 유희(柳僖, 1773~1837)이다.
『관상지』는 『문통(文通)』에 수록되어 있으며, 『문통』 가운데 수학 관련 저술을 필사한 『방편자유고(方便子遺稿)』에도 수록되어 있다.
『관상지』는 1802년(순조 2)에 완성된 책으로, 시헌력(時憲曆) 채택 이후 실제의 역산(曆算)과 역법(曆法)의 원리에 대한 이해 사이의 괴리, 다시 말해 역가(曆家)와 유가(儒家) 사이의 인식 차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한 것이다. 조선 후기, 서양 과학의 도입은 천문역산학(天文曆算學)의 측면에서 볼 때 시헌력의 채택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효종(孝宗) 대에 시헌력으로 개력(改曆)한 이후 조선의 천문역산학은 이 역법의 여러 원리와 계산법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 서양의 천문역산학은 역법의 담당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유학자들의 역리(曆理)에 대한 인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유희가 『관상지』를 저술한 1800년대 초는 시헌력이 채택된 지 100년이 훨씬 넘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당시 유사(儒士)들은 서양 천문역산학의 대강만을 파악하고 그 세세한 부분은 논하지 않았으며, 반면에 치력(治曆)을 담당하는 역가들은 세부적인 면에 치우쳐 ‘역리’를 이해하는 데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또 양자(兩者)가 사용하는 문자가 다르고, 근거하고 있는 도식이 같지 않아 서로 상대하기도 어려웠다. 그 결과 양자가 서로 상대방의 무지를 비웃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유희는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관상지』를 저술하였던 것이다.
『관상지』의 내용을 구성하는 두 개의 축은 전통 천문학과 서양 천문학이었다. 전통 천문학의 주요 내용은 『성리대전(性理大全)』, 『한서(漢書)』와 『후한서(後漢書)』를 비롯한 역사서, 『산당고색(山堂考索)』과 같은 유서(類書)에서 추출하였으며, 서양 천문학의 내용은 『역상고성(曆象考成)』을 참고하였다. 『관상지』는 상편에 ‘ 개벽(開闢)’으로부터 ‘복현한(伏見限)’까지의 17칙(則), 하편에 ‘역원(歷元)’부터 ‘윤월(閏月)’까지의 13칙, 도합 30개 항목으로 편제되었으며, 천지(天地)의 형성으로부터 치윤법(置閏法)에 이르는 천문역산학의 여러 문제를 요령 있게 정리하고 있다.
유희는 『성리대전』으로 대표되는 전통 천문학을 계승하는 한편, 『역상고성』과 『역상고성후편』으로 대표되는 서양 천문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양자를 절충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천문역산학 체계를 세웠다. 따라서 『관상지』의 논의를 통해 18세기 후반 조선 천문역산학의 내용과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