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동해에는 왜 조석이 발생하지 않는가에 관한 논의, 즉 ‘동해무조석(東海無潮汐)’에 관한 논의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그것은 동해라는 지리적 위치와 조석의 원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설명된다. 첫째는 ‘호흡설’에 입각한 설명이다. 한백겸(韓百謙, 1552~1615)은 조석을 땅의 호흡에 비유한 소옹(邵雍)의 견해에 근거하여 조석을 인체의 호흡에 비유하였다. 그는 조석을 인체의 호흡과 같은 일진지기(一陣之氣)의 왕래로 인해 조석이 발생한다고 보았고, 우리나라의 위치는 극동(極東)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나라의 동해에 조석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남극과 북극을 왕래하는 기운이 남북으로 곧장 오르내리기 때문에 기운의 여파가 좌우로 극동과 극서(極西)에까지 멀리 미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둘째는 지형적 원인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 근거는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다는 중국 중심의 전통적 지리 인식이었다.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동해에 조석이 없는 이유를 땅의 동쪽이 충만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찾았다. 충만하지 못한 까닭은 기(氣)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기가 부족한 곳은 물도 기를 따라서 말라 없어지게 된다는 논리였다.
셋째는 16세기 이후 축적된 역학적(易學的)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조석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상형(李尙馨, 1585~1645)은 선천 역학(先天易學)의 관점에서 조석의 이치를 해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선천도에서 동북(震)은 양(陽)이고 서남(巽)은 음(陰)인데, 음에는 영축(盈縮)이 있지만 양에는 영축이 없기 때문에 서남에는 조석이 있고 동북에는 조석이 없다고 하였다.
‘동해무조석설’은 서학(西學)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17세기 중반 이후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세계 지도와 지리서 등 서양 지리학의 성과물이 전래됨으로써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세계의 자연 · 인문 지리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조선 학계에 유입되었다. 그러한 최신의 지식과 정보에 입각하여 ‘동해무조석’의 문제는 새롭게 해석되어야 했다. 그와 같은 작업을 수행한 대표적 인물이 이익(李瀷, 1681~1763)이었다. 그는 한반도의 동해에 조석이 없는 것은 동해가 일본 열도에 의해 차단되어 하나의 호수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동남쪽에서 올라오는 조수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