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외의 여러 박물관에는 「혼천전도(渾天全圖)」라는 제목의 독특한 천문도(天文圖)가 소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같은 목판본 계열의 천문도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목판본 천문도를 베낀 필사본도 있고, 후대에 다시 목판으로 찍은 후각본(後刻本)도 있다. 「혼천전도」 천문도의 제작자와 제작 시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하나는 18세기에 관상감(觀象監)이나 민간의 학자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1848년(헌종 14)에서 1876년(고종 13) 사이에 김정호(金正浩)가 「여지전도(輿墬全圖)」라는 세계 지도와 하나의 세트로 제작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견해이다. 만약 후자의 견해가 옳다면 「혼천전도」는 개항 이전에 제작되어 19세기 조선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던 천문도인 셈이다.
「혼천전도」의 중심부에는 커다란 원 안에 별자리를 그려 넣은 성도(星圖)가 배치되어 있다. 성도의 좌측 하단부 바깥쪽에는 “남북 항성 도합 336좌 1,449성[南北恒星, 合三百三十六座, 凡一千四百四十九星]”이라고 기록을 붙여 성도에 336개의 별자리와 1,449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우측 하단부 바깥쪽에는 “남극 근처에 보이지 않는 별은 23좌 121성[近南極不見星, 二十三座, 凡一百二十一星]”이라고 하여 남극 주변의 보이지 않는 별자리와 별의 숫자를 기재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이 천문도의 상단과 하단 부분에 각종 도설이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천문도의 상단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칠정주천도(七政周天圖)」, 「일월교식도(日月交食圖)」, 「이십사절태양출입시각도(二十四節太陽出入時刻圖)」가 수록되어 있다. 도면의 하단에는 「이십사절신혼중성(二十四節晨昏中星)」이 성도의 우측과 좌측에 절반씩 나누어 기재되어 있고, 그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칠정신도(七政新圖)」, 「현망회삭도(弦望晦朔圖)」, 「칠정고도(七政古圖)」 등의 도설을 수록하였다. 이를 통해 「혼천전도」의 제작자가 조선 후기에 전래된 서양 천문학의 최신 정보를 도면에 담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천문도의 작도(作圖) 방식에는 문제점이 있다. 성도의 외곽에는 12차와 12궁, 24절기 등이 기재되어 있고, 성도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12개의 방사선을 그려 구획을 하였는데, 이는 전통 천문도에서처럼 28수를 구획하는 선이 아니라 시각선과 절기선을 나타내는 것이다. 적극(赤極)과 황극(黃極)을 중심으로 그린 서양식 천문도인 「적도남북양총성도(赤道南北兩總星圖)」나 「황도남북양총성도(黃道南北兩總星圖)」에서는 적극과 황극에서 시각선과 절기선이 방사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혼천전도」에서는 이 두 가지 방사선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성도의 북극 부분에는 작은 원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관측 지점의 위도에 맞추어 그린 주극원(週極圓)이 아니라 황도(黃道)와 적도(赤道)의 교각(交角)인 23.5°를 반경으로 그린 것이다. 이 원의 바깥쪽으로 적도와 황도를 그렸는데, 적도와 황도 모두 북극 중심의 원과 동심원이 아니다. 적도와 황도의 중심이 모두 성도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적도와 황도의 교점인 춘추분점이 성도의 중심에서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작도 방식의 「혼천전도」는 전통 천문도의 체계에 서양 천문도의 작도법을 절충시키고자 한 시도로 평가된다.
2023년 5월에 북한의 인민대학습당(人民大學習堂)에 소장되어 있는 「혼천전도」가 북한 정부의 신청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혼천전도」 조선의 지식인들이 전통적인 천문관과 서양 과학 전래 이후의 새로운 천문관을 어떻게 결합시키고자 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