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은 조선 후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제자로 천문학서 『정관편』을 저술한 과학 기술자이다. 이청은 스승 정약용을 도와 『대동수경』을 공동 저술하는 등 정약용의 저술 활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하던 정약전을 도와 『자산어보』를 공동 저술하기도 하였다. 1818년(순조 18) 유배가 풀려 정약용이 강진을 떠난 후에 이청의 활동은 기록이 없어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많은 저서를 저술하였으며, 말년에 8권 3책에 달하는 천문학서 『정관편』을 정약용의 지도없이 혼자서 저술하였다.
이청은 과학 기술 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과학 기술 지식과 정보에 상대적으로 해박하지 못했던 정약용의 총애를 받은 수제자였다. 이청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의 정약용의 저술 활동을 도왔다. 따라서 정약용의 저술 중에는 이청의 과학적 재능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정약용이 1818년(순조 18) 해배(解配)되어 강진을 떠난 이후 이청의 구체적인 활동은 기록이 없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후에는 강진에서처럼 정약용의 제자로 활동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정약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울 생활을 하며 최신의 과학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토대로 전문적인 천문학서(天文學書)를 저술하였다. 사대부 명문 집안도 아닌 강진의 한미한 아전 집안 출신이었던 이청이 고금(古今)의 중국과 조선의 천문학 관련 문헌들을 대거 섭력(涉歷)하여 전문적인 천문학서를 어떻게 저술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자연지리학 분야의 문헌인 『대동수경(大東水經)』(1814년)은 정약용과 이청의 공동 저술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정약용의 형 정약전(丁若銓)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하며 저술한 『자산어보(玆山魚譜)』 또한 정약전과 이청의 공동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이 강진을 떠난 후에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하나 남아있지 않으며, 말년에 저술한 8권 3책의 천문학서인 『정관편(井觀編)』이 이청의 현존하는 유일한 단독 저서이다. 이 책은 다산학단(茶山學團)의 학자들이 남긴 전문적인 천문학 책으로서는 유일한 저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