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 (청)

과학기술
인물
조선 후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제자로 천문학서 『정관편』을 저술한 과학 기술자.
이칭
금초(琴招), 학래(鶴來)
청전(靑田)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92년(정조 16)
사망 연도
1861년(철종 12)
본관
경주(慶州)
출생지
강진
주요 저서
정관편, 자산어보, 대동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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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청은 조선 후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제자로 천문학서 『정관편』을 저술한 과학 기술자이다. 이청은 스승 정약용을 도와 『대동수경』을 공동 저술하는 등 정약용의 저술 활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하던 정약전을 도와 『자산어보』를 공동 저술하기도 하였다. 1818년(순조 18) 유배가 풀려 정약용이 강진을 떠난 후에 이청의 활동은 기록이 없어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많은 저서를 저술하였으며, 말년에 8권 3책에 달하는 천문학서 『정관편』을 정약용의 지도없이 혼자서 저술하였다.

정의
조선 후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제자로 천문학서 『정관편』을 저술한 과학 기술자.
가계 및 인적사항

이청은 강진읍(康津邑)에서 대대로 이서(吏胥)를 지내던 한미한 아전 집안 출신으로 사대부는 아니었다. 정약용(丁若鏞)이 1806년(순조 6) 가을 유배지인 강진에 도착해서 당시 10살도 안 된 어린 이청의 아버지 집에 기거하며 유배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청은 정약용의 제자가 되었다.

주요 활동

이청은 과학 기술 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과학 기술 지식과 정보에 상대적으로 해박하지 못했던 정약용의 총애를 받은 수제자였다. 이청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의 정약용의 저술 활동을 도왔다. 따라서 정약용의 저술 중에는 이청의 과학적 재능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정약용이 1818년(순조 18) 해배(解配)되어 강진을 떠난 이후 이청의 구체적인 활동은 기록이 없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후에는 강진에서처럼 정약용의 제자로 활동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정약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울 생활을 하며 최신의 과학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토대로 전문적인 천문학서(天文學書)를 저술하였다. 사대부 명문 집안도 아닌 강진의 한미한 아전 집안 출신이었던 이청이 고금(古今)의 중국과 조선의 천문학 관련 문헌들을 대거 섭력(涉歷)하여 전문적인 천문학서를 어떻게 저술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학문과 저술

조선시대 대표적인 자연지리학 분야의 문헌인 『대동수경(大東水經)』(1814년)은 정약용과 이청의 공동 저술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정약용의 형 정약전(丁若銓)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하며 저술한 『자산어보(玆山魚譜)』 또한 정약전과 이청의 공동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이 강진을 떠난 후에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하나 남아있지 않으며, 말년에 저술한 8권 3책의 천문학서인 『정관편(井觀編)』이 이청의 현존하는 유일한 단독 저서이다. 이 책은 다산학단(茶山學團)의 학자들이 남긴 전문적인 천문학 책으로서는 유일한 저서이다.

참고문헌

원전

『대동수경(大東水經)』
『자산어보(玆山魚譜)』
『정관편(井觀編)』

논문

문중양, 「19세기의 호남 실학자 이청의 『정관편』 저술과 서양 천문학 이해」 (『한국문화』 37,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6)
문중양, 「정관편 해제」 (『다산학단 문헌집성』 6,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8)
임형택, 「정약용의 강진유배기의 교육활동과 그 성과」 (『한국한문학연구』 21, 한국한문학회, 1998)
집필자
문중양(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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