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명나라 말기 천주교도(天主敎徒)로서 예부시랑(禮部侍郎)의 고위직을 지냈던 서광계(徐光啓, 1562~1633)이다. 서광계는 일찍부터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등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과 교류하며 천주교로 개종하고, 그들의 번역 작업을 도와 많은 서양 과학서의 번역에 큰 역할을 하였다. 마테오 리치와 함께 유클리드(Euclid)의 『기하원본(幾何原本)』 등 수학서를 번역 또는 저술하였으며, 우르시스(Sabbathino de Ursis)를 도와 서양식 수리기술(水理技術) 지식을 담은 『태서수법(泰西水法)』을 편찬하였다.
서광계는 1629년(인조 7)부터 서양식 천문학과 수학 지식을 활용해 역법(曆法)을 개력하는 사업인 ‘숭정역서(崇禎曆書)’ 사업의 책임을 맡아 이끌었다. 사업 완료 1년 전인 1633년(인조 11)에 사망하면서 이지조(李之藻)가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서광계의 총책임 하에 아담 샬(Adam Schall von Bell) 등 예수회 선교사의 활약으로 이루어진 ‘숭정역서’ 사업은 17세기 서양의 과학 기술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유입되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1639년(인조 17) 진자룡(陳子龍)이 간행한 초간본[平露堂本]은 60권 36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전질이 소장되어 있다.
서광계는 1628년(인조 6) 무렵 초고를 저술하였으나, ‘숭정역서’ 사업에 매진하느라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그러자 그의 문하생이었던 진자룡이 초고본을 수습해 약간 보완 수정하여, 서광계 사후 6년만인 1639년에 12목 60권 50여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농업 백과전서를 편찬 간행하고, 책이름도 ‘농정전서(農政全書)’라 붙였다.
『농정전서』의 12목은 농본(農本) 3권, 전제(田制) 2권, 농사(農事) 6권, 수리(水利) 9권, 농기(農器) 4권, 수목(樹木) 6권, 잠상(蠶桑) 4권, 잠상광류(蠶桑廣類) 2권, 종식(種植) 4권, 목양(牧養) 1권, 제조(制造) 1권, 황정(荒政) 18권이다.
이 중에 기근을 구제하는 정책인 ‘황정’이 전체 분량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수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였는데, 서양식 수리기술을 담은 『태서수법』을 수록하였음이 주목할 만하다.
중국의 전통적인 농업기술과 정책을 총정리하고, 아울러 서양식 수리기술과 같은 최신의 농업 수리기술도 담아낸 농업 백과전서이다. 6세기 전반 북위시대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이 북방의 한전 농업기술의 중심이고, 원대 농서 『왕정농서(王禎農書)』(1313년)가 남방의 수전 농업기술의 중심이었다면, 서광계는 서양식 수리기술까지 겸비하면서 북방과 남방의 농업기술을 총망라해서 중국의 농학이라는 지식 체계를 집대성하려는 의도 하에 『농정전서』를 편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정전서』는 조선에도 유입되어 큰 영향을 주었는데, 서명응(徐命膺)의 『본사(本史)』, 박지원(朴趾源)의 『과농소초(課農小抄)』, 서호수(徐浩修)의 『해동농서(海東農書)』 등이 모두 『농정전서』의 농업기술을 수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