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왕(親王) 홍주(弘晝), 대학사(大學士) 아르태〔鄂爾泰〕와 장정옥(張廷玉) 등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명으로 편찬하였다.
총 78권 분량으로, 무영전(武英殿) 판본(1742년)은 24책, 문연각(文淵閣) 사고전서(四庫全書) 판본은 32책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1826년(순조 26)에 간행된 24책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1737년(영조 13) 5월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명으로 편찬이 시작되어, 1741년(영조 17)에 완성되었으며, 다음 해 1742년(영조 18)에 처음 간행되었다.
전체를 8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농가에서의 경작과 수확의 적절한 시기를 다룬 ‘천시(天時)’, 지세의 높고 낮음과 토양의 건조하고 습한 조건, 그리고 수리 기술을 다룬 ‘토의(土宜)’, 각종 작물의 성질을 다룬 ‘곡종(穀種)’, 경작하는 인력과 농업 기구 등을 다룬 ‘공작(功作)’, 역대 농업 정책을 다룬 ‘권과(勸課)’, 중국 역사 상의 상평창(常平倉), 사창(社倉), 의창(義倉) 등 구황 제도를 다룬 ‘축취(蓄聚)’, 채소 가꾸기와 목축 등의 경제성 농업을 다룬 ‘농여(農餘)’, 양잠과 방직 등을 다룬 ‘잠상(蠶桑)’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공작’에서 서양식 수리 기술을 다룬 『태서수법(泰西水法)』을 다룬 것이 주목할 만하다.
『수시통고(授時通考)』는 청 황실의 농업 정책을 찬양하기 위해 황제의 명에 따라 친왕 홍주가 주도해 편찬한, 정치성이 강한 청나라의 대표적인 종합 농서였다. 『농정전서(農政全書)』 이후의 농서에서 새로운 기술 내용을 추가하고, 고대부터 명청(明淸)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농업 기술과 사업의 예들을 고전적 문헌에서 고증학적(考證學的)으로 조사해 시대순으로 적어 놓은 것은 『수시통고』의 발전적인 측면이다. 이런 이유로, 『수시통고』는 명대 말기 서광계(徐光啟)가 편찬한 『농정전서』를 포함한 어떠한 농서보다도 우수한 농서였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태서수법』의 수리 기술을 중심 내용으로 다룬 수리 분야의 서술을 보면, 오히려 수록된 수리 기술을 실제로 활용하기에는 다소 불편하고, 서술 내용이 주제별로 정리되지 않고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어 『농정전서』에 비해서 체계적이지 못하다.
『농정전서』가 조선에 유입되어 큰 영향을 미친 것에 비해, 『수시통고』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예외적으로 19세기의 실학자 최한기(崔漢綺)는 『수시통고』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농서 『농정회요(農政會要)』와 수리 기술을 담은 『육해법(陸海法)』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