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철은 서울대 공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서 1950년대에 공군 복무 후 시발자동차회사, 국산자동차회사에 근무하였다. 5·16군사정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불려갔다가 상공부 화학과장에 임명되었다. 1960년대 중엽 공업제1국장으로서 경공업품의 수출과 화학섬유공업의 건설을 담당하였고,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1971년)의 양대 프로젝트 중 하나인 울산석유화학단지 건설을 맡아서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1960년대 말 안보 위기 후 경제기획원의 방위산업 건설 과업이 지지부진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오원철을 경제제2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여 방위산업 건설과 중화학공업화를 맡겼다. 오원철은 공학 전공자로서 당시 한국의 한정된 재원과 낮은 기술력을 고려할 때, 철강, 석유화학, 조선, 전자, 기계(자동차 포함) 등 6개 업종을 집중 육성하되, 수출(조선과 전자)과 내수(나머지 업종)로 구분하고 처음부터 국제 경쟁 규모로 건설한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한국의 중화학공업화가 여러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오원철의 기여도 컸다. 방위산업 건설과 관련해 군부와 마찰을 빚은 탓에 전두환 집권기에 부정 축재자로 몰려 이후 칩거하다가 1992년 기아경제연구소 고문을 맡았다.
자신의 경제개발 참여 경험을 『한국경제신문』에 「산업전략군단사」로 연재하였으며, 그를 1996~1999년에 전7권의 『한국형 경제건설』로 펴냈다. 박정희 집권기 경제개발에 관여한 인물들은 많으나, 많은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그를 토대로 상세하고 충실한 기록을 남긴 이는 오원철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