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창화집(睿宗唱和集)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 도교, 불교, 의학, 약학, 음양학, 활쏘기, 말타기, 거문고, 바둑에 두루 능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을 지내고 금주(金州, 김해)에 은거하고 있을 때 궁중으로 불려 들어갔다. 곽여가 항상 검은 두건을 쓰고 학창의(鶴氅衣: 학의 날개처럼 만든 옷)를 입고 예종을 모셨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금문우객(金門羽客: 궁궐을 드나드는 도사, 신선)이라 불렀다. 뒤에 예종이 약두산(若頭山: 개성 동쪽에 있는 산) 한 봉우리를 하사하여 살게 하면서 호를 동산처사(東山處士)라 하였고, 죽자 진정(眞靜)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예종이 곽여의 산재(山齋)로 미행(微行)을 나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10운 시를 써서 벽에 걸어두고 돌아가자 곽여가 그 시에 화답한 일화(『파한집』 권중)가 유명하다. 곽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