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居柒夫)
551년에 대각간(大角干) 구진(仇珍), 각간(角干) 비태(比台), 잡찬(迊湌) 탐지(耽知) · 비서(非西), 파진찬(波珍飡) 노부(奴夫) · 서력부(西力夫), 대아찬(大阿飡) 비차부(比次夫), 아찬(阿湌) 미진부(未珍夫) 등 8명의 장군과 더불어 백제와 연합하여 죽령 이북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탈취하였다. 이는 고구려에 대한 군사적 시위인 동시에 진흥왕 12년 이후의 친정체제(親政體制)를 뒷받침하는 조치였다.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즉 「마운령비(摩雲嶺碑)」와 「창녕비(昌寧碑)」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흥왕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장군으로 정치적 비중 또한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576년 진지왕이 즉위하자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되었는데, 이것은 그가 진지왕의 즉위에 어떤 구실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