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혜암(山惠庵)
16세기 중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석령사(石鈴寺)’로 나오며, 1744년(영조 20) 간행본인 『홍주읍지(洪州邑誌)』 사찰조에는 “산혜암은 읍의 주산 청원당 북면 서쪽으로 10리에 있다(山惠庵在州北面西距十里邑之主山作廳院堂)”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절이 폐사되었다고 적고 있어 정조대 무렵에 폐사되었다가 다시 중창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마곡사의 말사였으며, 김계장(金戒藏, 1912~1915), 장세완(張世完, 1915~1917), 지경운(池慶雲, 1918~1921), 이종환(李鍾煥,1918~1921), 박성전(朴成典, 1926~), 임홍근(林洪根, ~1932), 오연택(吳蓮澤, 1936~1942) 등이 주지에 재임하였다. 1922년 대웅전에 현왕탱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