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舟橋)
주교의 운영·관리는 주교사가 맡아 하였는데, 주교사에는 도제조 3인, 제조 6인, 도청(都廳) 1인, 기타 서리(書吏) 5인, 고직(庫直) 1인, 사령(使令) 4인이 배치되어 모두 준천사(濬川司:서울 성내에서 개천 치는 일을 맡아본 관청)의 관원이 겸임하였다. 국왕이 강을 건널 때에는 특별히 유도장신(留都將臣) 중에서 주사대장(舟師大將)을 차출하여 영접하게 하였다. 주교사의 재정은 영남 별회곡(別會穀) 200석에 한하는 모조(耗條:이자 곡식)와 호남 3조창(漕倉)의 조량(漕糧:漕軍의 양식), 조포미(漕布米) 807석, 콩 50석, 무명 7동 8필로 충당하였으며 부족할 때에는 호조에서 지급했다. 국왕의 능행로는 초기에는 삼전도와 한강진이 중시되었으나, 후기에는 광나루와 주교가 설치된 노량진이 중시되었다. 주교를 가설하는 방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