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득순(洪得順)
1933년 4월 수원공회당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제1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코스튬(コスチュ-ム)」으로 입선했다.도쿄미술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목일회(牧日會)가 목시회(牧時會)로 명칭이 변경된 후, 1937년 6월에 이마동, 백남순, 임용련, 장발 등과 함께 참여하여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제2회 전람회를 가졌다. 1930년대 후반에는 『동아일보』에 삽화가로 활동하면서 한설야의「청춘기」(1937년), 주요섭의 「길」, 이기영의 「신개지」(1938년) 등 소설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해방 직전에는 황해도 재령 명신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하였고, 당시에 화가 박창돈[예명: 박돈(朴敦)]에게 미술과 인생에 대하여 깊은 감화를 주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