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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茶道)

식생활개념용어

 차를 달여 손님에게 권하거나 마실 때의 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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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 / 잎차 다리기6
분야
식생활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차를 달여 손님에게 권하거나 마실 때의 예법.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차는 처음 음료수의 일종이나 약용으로 등장하였으나 차차 기호식품화하면서 취미생활과 연결되었고, 다시 일상생활의 도를 끽다(喫茶)와 관련지어 다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차의 연원은 전설의 시대에까지 소급되지만, 중국의 경우 4, 5세기경 양쯔강(揚子江)유역의 주민들이 애호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도의 성립은 8세기 중엽 육우(陸羽)가 『다경 茶經』을 지은 때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다도는 중국은 물론 우리 나라·일본 등에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 나라에도 삼국시대말에는 차가 있었고, 9세기 전반경에 성행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는 귀족층을 중심으로 다도가 유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다소 쇠퇴하였으나 사원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19세기초에 이르러 우리 나라의 다도는 다시 한번 일어났다. 특히, 초의(草衣)는 『동다송 東茶頌』을 지었고 차를 재배, 법제하는 방법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에서 크게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초의는 그의 『동다송』에서 다도에 대하여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고 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잘 우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끓일 때 물은 매우 중요하다. 물은 차의 체이기 때문이다. 차인들은 물맛의 우열을 평하고는 하였는데 이를 품천(品泉)이라고 한다.
초의는 좋은 물의 여덟가지 덕(德)으로, 가볍고, 맑고, 차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없고, 비위에 맞고, 탈이 없어야 할 것을 지적하면서, 급히 흐르는 물과 괴어 있는 물은 좋지 못하고, 맛도 냄새도 없는 것이 참으로 좋은 물이라고 하였다.
고려말의 이행(李行)도 품천을 잘하여 충주 달천(達川)의 물이 제일이고, 금강산에서 시작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가 그 다음이며,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가 세번째라고 평하였다.
신라시대의 다천(茶泉)으로는 사선(四仙)이 차를 달여 마셨다는 강릉 한송정의 다천과 효명(孝明)과 보천(寶川)이 차를 끓였다는 오대산 서대의 우통수(于筒水)가 유명하였다. 이들 우물은 현재까지도 마르지 않고 있다.
고려시대는 이규보(李奎報)가 기문을 쓴 바 있는 냉천정(冷泉亭)의 샘물이 유명하였고, 안화사(安和寺)의 샘물 또한 이름이 있었다. 그래서 이숭인(李崇仁)은 안화사의 샘물 한 병을 차 한 봉과 함께 정도전(鄭道傳)에게 선물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는 속리산 복천암(福泉庵)의 우물이 유명하여 신위(申偉)는 한보정(閑步亭)이라는 차실을 짓고 바위 밑에서 나는 샘물을 길어 차를 끓이고는 하였다. 김노경(金魯敬)은 두륜산 자우산방(紫芋山房)의 유천(乳泉)을 맛보고, 그 물맛을 높이 평가한 바 있고, 초의 또한 이 유천의 물맛을 자랑으로 여겼다.
좋은 샘물은 그때 그때 길어서 쓰면 좋지만, 샘물이 가까이에 없을 경우 물을 길어다 저장해서 쓴다. 물의 저장에는 독이 적당하고, 헝겊으로 입구를 덮는다. 오늘날의 도시인들은 대부분이 수돗물을 쓰는데, 이를 다시 정수시키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수도꼭지를 완전히 열어서 한참 동안 물을 흘려보낸 다음 받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옛날에는 화로나 풍로에 불을 피우고 철병이나 차솥 등으로 물을 끓였지만, 오늘날은 커피포트 등으로 물을 끓인다. 좋은 차맛을 내기 위하여서는 물을 잘 끓여야 하는데, 이 때문에 차인들은 화력의 상태[火候]나 물이 끓는 정도[湯候]를 정확히 구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는 한다.
물이 끓는 정도를 분간하는 탕변(湯辨)에는 형변(形辨)·성변(聲辨)·기변(氣辨) 등이 있다. 물거품이 일어나는 정도에 따라 구별하는 것이 형변이고, 물이 끓는 소리에 따른 구분이 성변이며, 김이 나는 정도에 따라 변별하는 것이 기변이다. 완전히 잘 끓은 물을 경숙(經熟), 그렇지 못하고 설끓은 물을 맹탕(萌湯)이라고 한다.
말차(抹茶)와 전차(煎茶)에 따라 우려내는 방법이 다르다. 말차는 찻가루 약간을 찻숟가락으로 떠서 다완에 넣고 끓인 물을 부어 다선(茶筅)으로 격불(擊拂)하여 거품이 잘 일게 하여 마신다.
전차의 경우 다관에 차와 끓인 물을 넣고 차가 잘 우러났을 때 찻종에 따른다. 차의 품질에 따라 탕수(湯水)의 온도에 차이를 두는데, 대개 70℃∼90℃가 적당하다.
그리고 차를 넣는 투차(投茶)에는 차를 먼저 넣고 탕수를 붓는 하투(下投), 탕수를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뒤 다시 탕수를 더 붓는 중투(中投), 탕수를 먼저 붓고 그 위에 차를 넣는 상투(上投) 등의 방법이 있다.
겨울에는 하투, 여름에는 상투, 봄·가을에는 중투를 하는 것이 좋다. 다관에서 차를 우려낼 때는 그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빠르면 차가 제대로 우러나지 않고, 너무 늦으면 차의 향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찻잔에 차를 따를 때 차의 농도를 골고루 하기 위하여 몇 개의 찻잔을 왕복하면서 따른다. 대개 한번에 찻잔의 6분의 1 정도를 따른다. 다관의 찻물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따라야만 재탕 때 좋은 차맛을 보존할 수 있다.
차를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겨 예로부터 혼자서 마시는 것을 신(神), 손님이 둘일 경우를 승(勝)이라고 하였다. 손님이 많은 경우는 시끄러워 아취가 적기 때문이다.
차는 색(色)·향(香)·미(味)의 세가지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 차의 색은 청취색(靑翠色)이 제일 좋고, 남백색(藍白色)은 다음이며, 그 밖의 황색 등은 품(品)에 들 수 없다고 한다.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을 상(上), 씁쓰레한 것을 하(下)로 여긴다. 차의 향기는 독특한 것이기에 다른 향을 섞으면 좋지 않다. 차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이 좋다.
차를 끓여 손님에게 접대하는 일에는 격식이나 예의도 문제가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물을 끓여 간을 맞게 하여 마시는 일이다. 물론, 간맞는 좋은 차가 되기 위해서는 물과 차 등이 알맞게 조화를 얻어 중정(中正)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음다의 풍습이 성행한 곳은 주로 선가(禪家)였다. 이것은 졸음을 쫓아주는 차의 약리적 효과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차도의 정신과 선의 정신이 서로 계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다선일미설(茶禪一味說)이 생겨나게 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이러한 경향은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차”라고 하였던 육우로부터 비롯되었고, 백장(百丈)·조주(趙州) 등의 선사에 이르러 그 깊이를 더하였다.
특히, 조주는 도(道)를 묻는 제자에게 “끽다거(喫茶去)”라고 대답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뒷날 선가의 유명한 화두(話頭)가 되기도 하였다. 끽다는 평상심(平常心)이고, 평상심은 곧 도이자 선(禪)이라는 다선일미사상은 고려시대 이후 우리 나라의 선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고려의 승려들은 차를 즐겼고, 차를 마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진리를 터득하려 하였다. 지눌(知訥)이 “불법(佛法)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곳에 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다선일미의 사상은 19세기 초의에 의하여 더욱 강조된 바 있다. 그는 한 잔의 차를 마시되 법희선열식(法喜禪悅食)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차란 그 성품이 속되지 않아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하면서 “차의 더러움 없는 정기를 마실 때 어찌 대도(大道)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랴.”고 자부하기도 하였다. 흰구름 밝은 달을 벗삼아 마시는 차인의 멋은 바로 푸른 산을 대하여 앉아 삼매에 든 선사의 법열로 통하는 것이었다.
김정희(金正喜)가 초의에게 써보낸 「명선 茗禪」이라는 작품은 차와 선이 한맛으로 통한다는 것을 강조해주고 있다. 또한, 이상적(李尙迪)이 찻잔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부처님의 수많은 화신(化身)으로 읊었던 것도 차를 통하여 선으로 나아갔던 것이고, 차를 마시면서 선열에 젖었던 예이다.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그 잘 끓인 물과 좋은 차를 간맞게 하여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취미생활이다. 찻잔을 씻고, 물을 길어 나르며, 목마를 때 마시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이와같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떠나 도가 있지 않다. 선도 또한 평상심을 떠나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차와 선은 한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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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1996년)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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